유비무환(有備無患). 군은 이같은 이유로 존재한다. 국민 혈세의 상당액을 국방비로 할애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느 누구도 예고하지 않고 그렇다고 예고할 수도 없는 유사시를 준비하는 집단이 바로 군이다.
이런 속성은 군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GP 총기 난사사건 사망자를 처리하는 모습은 유가족들에게 결코 신뢰를 얻지 못했다. 사고는 오전 2시30분께 발생했는데 유가족들이 소식을 접한 시각은 3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내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무작정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했다.
다리 부상이란 잠시 안도감도 있었지만 병원에 도착해 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부상을 입은 상흔은 살점이 버젓이 삐져 나올 정도로 엉성히 봉합돼 있었다. 내 피붙이가 죽었는데 정확한 사고경위를 알 수 있는 통로는 병원 어디에도 없었다. 그 흔한 TV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볼 수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탔지만 물 한 잔 제대로 마실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궁금증을 물어보면 ‘신속’과 ‘정확’ 등을 기조로 삼는 군의 대답은 30분이나 지나기 일쑤였다. 답변도 여기 물어볼 때 틀리고 저기 알아볼 때 달랐다.
사고를 제대로 밝히고 책임질 수 있는 ‘윗선’들은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나타났다. 이처럼 군이 흐트러지고 있으니 병원은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다 모 사망자 기록을 잃어버렸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차마 말문이 막혀 한을 온몸으로 흐느끼는 유가족들에게서 분노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런 군을 믿고 내 자식을 군에 맡길 수 있겠느냐는 피맺힌 비난이 끓어 올랐다. 휴일을 뒤흔든 소식에 육군양주병원도 최선의 모습을 보여 줬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가족이 생각하는 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가족들에겐 모든 면면이 유감스럽기만 한 날이었다.
/배 성 윤 기자 syba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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