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괴물이다. 성장을 이끈 거인이 시장의 역적으로 전락했다. 해외 도피생활을 5년8개월만에 끝내고 돌아왔다. 귀국 즉시 영어의 몸이 됐다. 김우중 진앙의 지진이 요란하다.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 원조로 꼽히고 있다. 20조원의 불법대출 혐의를 받고 있다. 25조원 상당을 해외도피시킨 것으로 전한다. 20조원의 비자금을 조성, 10조원 가량이 정·관계 로비에 흘러든 것으로 알려졌다. 투입된 공적자금 40조원 중 약 15조원은 회수가 불가능해졌다.
대우가족들 피해가 막심하다. 그룹의 경영비리로 임원 14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임원 7명은 추징금 23조원이 병과됐다. 임원들은 그렇다고 쳐도 사원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또 대우가족은 가족이니까 그런다지만 도산된 대우 관련의 중소기업들은 아무 죄없이 당했다.
국내 재벌은 정경유착이 태생지다. 1970년대 고도성장으로 나간 박정희 정권이 외국에 내세울 국민자본의 대표자가 필요해 만든 것이 곧 재벌들이다. 달러를 벌어들이는 덴 재벌의 주역이 O서방이든 X서방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국내에 외화만 떨어뜨리면 그만이었다. 정경유착의 관치경제, 관치금융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김우중 역시 그런 정경유착에 힘입어 대우그룹을 굴지의 대기업 종합상사로 키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위가 어떻든 성장과 고용에 크게 기여는 했다.
그러나 그는 때를 몰랐다. 여러 재벌의 창업주들이 물러간 차세대 경영의 잇따른 등장은 재계의 변화를 예고했다. 당연시됐던 정경유착을 점차 부도덕시 하게 됐다. 비록 정권의 우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도 시류는 변했다. 재벌은 권력의 힘보다 시장의 힘에 지배되는 추세로 인식이 달라졌다. 그런데 김우중은 그게 아니었다. 경영 일선의 재벌1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생각이라도 바뀌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정경유착의 창업 관념을 여전히 신앙화 했다. 그룹이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이 여기서 시작됐다. 분식회계, 불법대출, 외화유출,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등이 다 정경유착의 전형적 관행이다.
기업 이윤을 노동력 착취로 본 진부한 잉여가치설은 퇴출된 지 오래다. 기업은 존립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에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 현대적 개념이다. 작금의 국가사회를 버텨주는 것도 기업이다. 정권은 외형상의 모습이다. 내공의 힘은 기업으로 집약 분출된다. 이런데도 반기업 정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시각은 더 한다. 김우중 같은 부도덕한 기업인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대우 사태의 원흉이 아니다. 수 십 조원의 국민세금을 축낸 날도둑이다. 반기업 정서를 조장시킨 파렴치한 경제사범이다.
도망자이긴 해도 중국·독일·프랑스·수단·미국·베트남 등지를 주유했다. 생활도 요족하였다. 자진 귀국의 시점이 왜 이 시기인가에 대해 보는 눈이 분분하다. 갖가지 설이 나돈다. 당국과의 교감설은 그 가운데 하나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거액의 정·관계 로비자금이 어디까지 흘러 들었는 지 궁금하다. 비록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는 지났어도 정치 생명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앞으로의 검찰 진술이 주목된다. 어쩌면 이도 정경유착이 아닐지 모르겠다. 현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골라가며 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귀국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책임지기 위해 귀국한다”고 했다. 물론 책임은 져야 한다. 하지만 몸으로만 때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징역 좀 살면서 특사받을 꿍꿍이 속이 있다면 국민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한다. 법의 심판을 받고 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외에 도피시킨 달러, 국내에 은닉된 부동산 할것 없이 전 재산을 사회에 되돌려 내놔야 한다. 이만이 진정으로 책임지는 거인다운 면모다. 고희를 넘겼다. 인생을 달관까지는 못해도 그런 노력의 마음가짐은 가질만하다.
빈 손으로 왔다고 빈 손으로 간다. 뭐가 그리 대단해서 마음을 못비우는 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왕년의 김우중다운 거인의 면모를 역시 보일 것인지, 아니면 끝내 시장의 역적으로 전락할 것인지는 그의 선택에 달렸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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