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금강산 길의 통일기원

얼마전에 이정우 평택시의회의장, 이재운 1천만 이산가족 상봉 평택시 추진위원장 등 평택지역 평통위원 33명이 금강산을 육로로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버스가 남방 한계선인 남강통문을 지나 북한땅을 밟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비록 분단은 아직도 면치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남북을 왕래할 수 있다는 것이 예전에 비해선 격세지감을 갖게했다. 차창밖을 보니 금천리란 마을이 보였다. 역시 북녘 동포의 생활환경은 열악해 보였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있는데 마주치는 차량의 상표가 선명한 기아차였다. 북한땅에서 남한에서 만든 자동차를 보는 느낌은 또 달라 무척 반가웠다. 이윽고 금강산에 다다랐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소인 김정숙 별장을 지나 수기 너머 고개에 이르니 수백년 묵은 미인송, 황장목 등 금강송이 배달민족을 상징하듯이 드높은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특히 미인송은 지구상에서 백두산과 금강산 그리고 시베리아 원동 등 세 군데서만 자라는 세계적 희귀목이다.

금강산은 듣던대로 과연 절경중 절경의 명산이다. 어디를 가든 감탄이 절로 나왔다. 북한 감시원과도 자연히 많은 대화를 나눴다. 생활과 체제가 다른 이질감은 많았으나 그래도 한 핏줄인 동포인 점은 서로가 공감할 수 있었다. 금강산에서 일행중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은 북에 계시는 조상님들께 인사를 올렸다. 자유로운 왕래를 하지 못하는게 참으로 안타까웠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하산해서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세계적 수준의 기예도 놀라웠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공연은 보는 이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는 동안 특히 이북이 고향인 평통위원들은 하나같이 뜨거운 눈물을 쏟아 가슴이 뭉클했다.

문득 전에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6·25때 북에 아내를 두고 남하한 청년이 곧 고향에 돌아가게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어 천수를 다했다. 유품중엔 종이에 꼼꼼히 싼 금반지가 메모지와 함께 발견됐다. ‘여보 이 반지를 꼭 당신에게 끼어주어야겠는데 살아생전에 만날수 있을는지 실로 한이 되는구려…’라고 씌어 있었다. 그 노인은 물론 남한에서 재혼하여 슬하에 자녀까지 두었으나 북에 남겨둔 아내를 마음속으로는 늘 잊지 못했던 것이다. 이 기막힌 얘기는 그 노인의 손자가 어느 통일문예전에서 ‘할아버지의 금반지’란 제목으로 글을 써 장원으로 뽑혀 알려졌다. 분단의 한이 어찌 그 노인 뿐이며, 어찌 우리 일행의 평통위원들 뿐이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처지의 이산가족이 많고 이산가족 1세들은 이미 늙어 여생이 많지 않다. 통일이 되면 더할 수 없이 좋지만 남북간에 조건이 안맞아 당장 평화통일이 안되면 서로 소식이라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신교환, 자유로운 상봉, 가족왕래 등 활발한 민간교류가 하루빨리 있게되기를 고대한다. 지구촌에서 유일한 민족분단지역이 한반도라고 한다. 남으로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통일이 되어 ‘쾌지나 칭칭’의 노래가락이 퍼지는 그날이 언제일까 생각해 봤다. 역사와 민족의 숙제인 올바른 통일관 정립이 후대를 위해 절실하다.

/이 익 재 민주평통 평택시 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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