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을 듣고 싶다. 잇속있는 말만 좋은 말인 건 아니다. 손해가 나도 듣기에 좋은 말이 있다. 잇속을 챙겨 주어도 듣기싫은 말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빛나는 것은 극중 대사, 즉 말이 빛나기 때문이다. 그의 대사는 인간사에 시대를 초월하는 신비성이 담겼다.
사람이 살면서 빛나는 말만 하면서 살 순 없다. 범부들은 그렇다. 그러나 우리네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말은 다르다. 나라를 이끄는 책임있는 사람들 말은 더더욱 달라야 한다. “1997년 한국경제가 한번 팍 고꾸라진 뒤 2003년에 또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제 다 극복이 된 것 같다. 한국 경제는 매우 건강하다” 국민 여러분! 정말 지금 우리 경제가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잘 먹고 잘 사는 높은 분네들께 묻는 것이 아니다. 빚 투성이에 허덕이는 서민들, 장사가 안 되어 아우성인 소상공인들, 일자리가 없어 허덕이는 실업자들, 물가고에 시달리는 주부들, 공장을 멈춰야할 판인 중소기업인들, 이런 국민 대다수 분들께 묻는 것이다. 해답은 이렇다. 어느 나라 얘긴지 모르겠다는 것 같다. 바로 우리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다. 진짜 팍 고꾸라질 일이다.
바깥 나들이만 나가면 뭣이 도지는 것 같다. 터키에 사는 동포 간담회에서 한 노무현 대통령의 ‘친미론’ 얘긴 조(趙) 아무개 청와대 대변인이 애써 거드는 지경까지 됐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부 언론인과 학자가 친미파…”란 얘긴 도시 무슨 소린지 알다가도 모를 소리다.
해괴한 것은 외교부다, ‘대한민국 외교부엔 친미파가 없다’니 이는 또 웬 뚱딴지 같은 흰 소린지 갈수록 가관이다. 반(潘) 아무개 장관은 아직도 청와대수석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의 외교 참모일 뿐 대통령의 외교 선생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부인지 무소신인지 듣기에 헷갈린다. 명색이 일국의 국무위원이 대통령에게 소신에 따라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고 시키는대로 한다는 말은 듣다 보아도 처음 듣는 소리다. ‘외교부’란 간판이 아깝다.
자유당 정권 시절 대통령 이승만 내각에 ‘지당장관’과 ‘낙루장관’이란 게 있었다. 이승만이 말하면 덮어놓고 “지당하십니다…”로 맹종하는 각료가 ‘지당장관’이었고, 대통령 말에 감격이 넘친 것처럼 눈물 쇼를 벌이는 장관이 있어 ‘낙루장관’이라고 했었다. 근래 돌아가는 모양새가 오래 전의 일로 까마득하게 잊었던 고사를 연상케하는 것은 국민적 불행이다.
한미동맹이 불건전한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이를 걱정하는 게 친미라면, 그럼 한미동맹이 잘 나간다고 우기는 관점은 뭣인지 묻는다. 친미와 대칭되는 용어가 반미인 진 몰라도 여기선 굳이 그보다는 ‘비친미’라고 일단 표현하고 싶다. 비친미가 주장하는 국익은 친미가 보는 국익과 어떻게 다른가도 묻고 싶다.
도대체 아무 짝에 쓸모없는 ‘친미’를 들춰가며 긁어서 부스럼내는 것을 국익으로 여긴다면 이는 현대판 대원군식 사고 방식이다. 미국과 공조하는 한국적 국익을 사대주의적 친미행위로 매도하는 자폐증은 병세가 너무 심각하다. 지금같은 세상에 사대주의를 가질 쓸개 빠진 백성은 친미든 아니든 있을 수가 없다.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 큰 소리, 되레 국민이 불안해 할 큰 소릴 쳐놓고 큰 소리 쳤다고 자위하는 것은 웃기는 비극이다.
남북 대화가 1년 가깝도록 중단된 가운데 북은 6자회담 복귀는 커녕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으로 미국을 압박해 미국은 이에 북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 회부 태세로 맞서고 있다. 친미 매도, 동북아 균형론의 중국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무 약발없이 북 핵 문제는 더 어렵게 꼬여만 간다. 정말 팍 고꾸라질 노릇이다.
이 정권은, 이 정부는 좀 더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할 말을 해도 전략화가 필요하다. 전략화되지 못한 허튼 소린 메아리가 없다. 국민이 듣기에 좋은 말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부담이 가는 듣기싫은 말도 듣기좋은 말이 되는 게 얼마든지 있다. 당장은 입에 쓴 말도 신뢰성이 있어 희망이 보이면 박수를 친다. 이처럼 빛나는 말을 들을 수 있길 근심 걱정많은 이 나라 백성들은 갈구한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