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K씨를 만난 것은 지난 1998년 봄이었다. 만남은 그녀가 나를 찾아와서 만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의 아들을 상담하면서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그녀의 아들은 비교적 온순하게 생긴 보통의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모습과는 다르게 참 복잡한 문제로 보통 어머니가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주었고 지금 그녀는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소진 상태로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K씨는 남들 결혼할 나이에 결혼해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거의 무의도식하면서 가끔 이상한 행동과 폭력을 휘두르는 등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느날 3일 정도 가출을 했다 돌아와 보니 딸은 고아원에, 아들은 친정에 보낸 상태였다. 그 후 딸을 찾으려 무진 애를 썼지만 못 찾고 이혼 후 아들은 친정에 맡기고 본인은 외지에서 장사를 해 동생 공부도 시키고 친정도 도왔다고 한다.
아들은 엄마를 이모로 알고 시골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을 했는데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부적응, 친구들과 지나친 갈등, 두통, 불면 등으로 힘들어 하다가 내게 상담을 신청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나머지 엄마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 엄마와 말씨만 비슷해도 적의를 내보이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이후 엄마의 동의를 얻기 위해 정신과에 의뢰한 결과 경계성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 후 계속 치료를 했지만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결국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상해를 입혀 구속까지 됐다. 정신 감정을 받고 출소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개선되지 않고 지금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K씨는 지금 아들 문제로 나머지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혼자 아들을 돌보며 사는데 다시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키고 한계에 다다른 자신을 내 보인다. 공공 근로와 포장마차 운영으로 살아보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하소연이다.
지금 K씨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약간의 생계지원이 아니다. 이 아프고 쓰리고 힘든 마음을 풀어내고, 들어주고, 상처를 치유해 줄 상담이 필요하다. 향후 아들이 어찌될 지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고, 정부가 아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퇴원 후 아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상의하고 싶고, 또 아들이 난폭해져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될 때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지도 알고 싶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분적 도움을 주는 곳은 있지만 복잡한 가족 문제를 종합적으로 상담해주고, 관련 정보를 제공해 주는 기관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가족 문제는 이혼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K씨처럼 복잡하고 당장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할 대상이 주변에 너무 많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지나 복지국가를 지향하지만 국민들 의식에 자리 잡은 복지 욕구에 접근하기에 우리 사회복지 수준은 너무 미흡한 것 같다. 제한된 예산의 효율적 배분이 복지의 기본이고 정책의 첫걸음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혼만이 가족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또 가족 문제는 단순히 상담만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도리어 지극히 사적 영역인 부부 사이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라는 권력이 끼여드는 문제에 대한 논란이 더 크다. 진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도움을 요청하는 가족들의 요구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언제나 찾아가 나를 드러내고 도움받을 곳을 곳곳에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힘을 받아 다시 일어서도록 돕는 것이다.
/ 한옥자
수원가족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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