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5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요즈음 집 앞 등산로를 산책 하노라면, 여기 저기서 젊은 아낙네와 할머니들이 쑥과 나물을 뜯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이전에 한적한 시골 산골에서나 느낄 법한 그 평화로움과 따스함이 내 마음에 다가와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그나마 나에게 위로와 평안을 줄때가 있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더불어 사는 우리의 현실이 영원하기를 꿈꾸며 자아도취에 빠져 보기도 해본다.

산천의 오묘한 색의 변화를 보며 벌써 봄의 중턱을 넘어선 4월의 이 아침에 내가 삶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는 기쁨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한겨울의 시린 날들을 뒤로 하고 어김없이 새싹이 움트고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뜨리는 새봄을 맞이하면서 자연의 신비로움, 경외로움을 또 다시 느끼며, 그 가운데 우주의 본질을 담고 있는 생명체의 연속, 흐트러지지 않는 기본질서의 연속은 신의 축복으로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오늘은 4·19혁명 45주년을 맞는 날이다. 4월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유명한 장편서사시 ‘황무지’의 첫 구절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단어다. 오늘 그 시를 언급함으로 조국의 민주제단에 꽃다운 젊음을 바친 4·19 자유민주주의 혁명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

그는 이 시를 통해 정신의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를 표현하고 싶어 했다. 역설적으로 보면 죽음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가장 잔인한 달이 우리에게 가장 기쁘고 의미 있는 달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생명을 움트게 하는 고통은 대지만의 아픔이 아니고 그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주위의 모든 사물과 사유의 몫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 4월이 우리에게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삶을 이어준 역사적 사실, 4·19혁명 기념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국가의 면모를 세우기도 전에, 외세 사상으로부터 국토와 정신이 분단되어 언어와 습성이 같은 동일 민족끼리 전쟁을 겪고 난 때, 백성을 우민화하여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왜곡하여 독재와 부패가 만연한 그 때, 기성의 모든 틀을 새롭게 일신하고자 자신의 안위를 뒤로한 채 독재세력에 항거하였던 우리 헌정사에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이념을 확고히 뿌리내리게 한 위대한 민주시민혁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4·19혁명정신은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 굶주림이 없는 나라,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물려 줄 수 있는 그런 꿈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는 정신 이었다. 그 정신의 주체가 되었던 세대가 이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다음 세대가 국가의 미래와 번영에 대한 책무를 계승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선조들의 민주이념을 올바로 전승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각자의 위치에서 반문하고 실천의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국·내외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독도와 역사왜곡으로 인한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 북한의 핵문제 등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거나 가볍게 여길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각자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국제질서를 세우고 있고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자국의 이익과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오늘 이 아침에 이 땅에 민주이념의 토대를 세운 4·19민주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에 감사하고, 또한 4·19혁명정신을 이어받아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지금의 국가적인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봄날 나물 뜯는 아낙네의 평화로움과 따스함이 우리 모두의 삶에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노 영 구 수원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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