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일본의 대표적 지성으로 알려진 도쿄대 다카하시 데츠야 교수의 강연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으로 시작된 한일 양국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일본 지식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기사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강연에서 그는 “오늘날 일본 민주주의는 정신의 자유를 위협하고 정교분리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국가주의 세력들의 헌법 개악 움직임으로 위기에 처했다”며 일본 사회의 우경화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평화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교분리 원칙과 관련해 일왕과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이미 4차례나 위헌판결을 받았다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를 무시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천박한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의 평화헌법이 패전의 산물인 반면 한국 헌법이 담고 있는 민주적 가치들은 시민들이 시련 속에 싸워서 얻은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며 “우익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에 맞서고 있는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인과의 연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말도 했다.
짧은 지면에 그의 강연내용을 길게 소개한 것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으로 시작된 한일 양국의 갈등은 다카하시 교수의 말대로 결국 일본 정치인들의 인식전환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금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과잉 반응하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며 차분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다. 손가락을 자르고 일장기를 불태우는 등의 자극적인 시위는 일본인은 물론 국제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적한 대로 일본 언론은 독도문제를 거의 거론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 언론 역시 한국이 더 다급한 북한 핵 문제를 제쳐 두고 영토분쟁에 힘을 낭비하고 있다며 한국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홀로 흥분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 우리의 이러한 행동은 일본 정치가들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망발은 바로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를 진정으로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합리화 시키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 국민의 이러한 행동은 결코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이 역사 속에서 우리처럼 피지배자의 입장에 있었다면 이들 나라의 언론이 과연 지금처럼 냉정한 관점에 설 수 있을까.
지난 달 30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비난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무성 장관이 유감의 뜻을 표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타오)를 다음 학습지도요령 개정에는 일본의 영토로 분명히 써야한다는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의 망언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러한 발언들은 지난 달 25일 고이즈미 총리가 “노 대통령과 빨리 만나고 싶다”며 문제의 조기해결 의지를 피력한 뒤 나온 것이어서 과연 일본 정부의 진의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각의 주장대로 독도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너무 감정적이고 이것이 국제 문제화 할 경우 외교적 실익이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 보수주의의 망언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다카하시 교수의 말대로 한국 시민단체가 양심있는 일본의 지식인과 시민사회와 연계를 해서라도 한일간 우호증진을 저해하는 일본 극우세력에 계속적인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번성은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그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바로 일본의 군국주의와 팽창주의의 확대를 노리는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과거 식민 지배를 반성하며 한일간의 평화와 우호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과 일본 시민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보는 우리 정부의 입장 역시 일본의 정치세력과 시민사회를 분리해서 대응하겠다는 것이니만큼 전략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올해는 ‘한일 우정의 해’이다. 한일의 민간 교류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를 기화로 크게 활성화되는 추세였다. 또 일본에서는 모처럼 한류열풍이 불어 양국민간에는 모처럼 친숙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국익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독도문제로 인한 한일의 증폭되는 갈등은 분명 한일교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카하시 교수의 강연내용이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바로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를 강조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원 유 철 전 국회의원(美스탠포드大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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