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설날의 또 다른 의미

징검다리 황금연휴로 이어지는 설이 코앞에 다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리운 고향을 찾아가는 거대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전반적으로 썰렁한 경기지만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마음에는 여유가 넘칠 것이고, 귀성인파도 여느 해 못지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고향이 더욱 그리운 것일까. 설레며 찾은 고향은 넉넉한 인심만은 아닐 것이다. 논란을 거듭하던 쌀 협상은 마무리 됐지만 농민들은 여전히 수심에 차 있기 때문이다.

조상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둔 설은 조상과 자손이 함께하는 아주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 도시화된 공간의 굴레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숨 막힐 듯한 도시생활과 소음과 갖가지 공해로 찌든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연휴기간이나마 해방되는 즐거움을 갖게 된다. 설은 일터를 찾아 여기저기 흩어졌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삶의 갈증을 풀어내는 시간이다. 또한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생활에서 조상과 함께하는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설빔을 갈아입고 정성스럽게 차례를 지내며 세찬을 나누고 웃어른께 세배를 하면서 ‘한 가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설은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명절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업률이 수년째 상승세를 보이는 등 경제사정은 여전히 가파른 고개를 넘듯 어렵다. 내수경기가 다소 회복되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고는 하지만 가계부채문제가 아직 완전 해결되지 않았고 고용사정도 좋지 않아 회복 단계로 보기 어렵다. 계속되는 경기불황의 여파로 민심마저 흉흉하게 만든다.

고향을 찾은 가족 중에는 명퇴자나 청년실업자가 한 둘은 있을 법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반듯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취업 준비에 매달려 있는 가족도 있을 것이고, ‘아르바이트’ 수준인 일자리에 매달려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설날 고향을 찾은 이들 모두가 애정으로 맺어진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고 재충전하여 자신감을 갖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자신감은 언제나 행동하며 동요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잡지 못해 오는 초조감, 불만, 불안감 등이 가족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여서 그 안에 녹게 되길 기대한다. 윤리와 가치관이 많이 혼란스러운 이 때 건강한 가족관계는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지침이 된다. 경제력이 없는 청소년들의 왜곡된 소비문화와 과소비 등 잘못된 가치관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다. 청년실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라도 그 근간이 되는 단위는 바로 가족이다. 서구사회보다 더 튼튼한 가족간의 유대감이 지탱해 주고 있어서 현대문명을 전해준 그들 보다 우리가 더 건전한 문화적 틀을 가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아무쪼록 올 설 귀경 길에는 자신감을 갖고 두 손 가득 희망과 용기를 들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희망과 용기는 만병을 다스리는 치료약이기 때문이다. 덕담(德談)을 나누며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설은 그래서 전통적 가치로서의 의미를 넘어 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 훈 동 수원예총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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