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다. 초겨울의 들녘을 헤쳐가며 ‘해피 수원’ 로고가 선명한 수원시청 버스로 40여명의 일행이 남으로 남으로 달려 근 8시간만인 어두울 무렵 진해에 도착했다. 몸은 모두 파김치가 됐으나 수원함 장병들 위문의 설레임으로 마음은 풋풋했다. 해군회관에서다. 안내 책임을 맡은 수원함 작전관 A 대위가 부인의 첫 아이 산고로 병원에 입원시키고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딱한 사정을 알았다. 귀가할 것을 권했으나 위문단 일행을 맞는 것도 작전명령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며 끝내 부동의 자세로 떠날 줄 모른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때였다. “그럼! 이젠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므로 세번째 아이부터는 내가 학비를 댈테니 많이 낳아요. 기왕이면 연거푸 쌍둥이로!” 김용서 시장의 말에 좌중의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A 대위의 화답과 함께 단아한 거수경례가 있자 일행의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해군회관서 새우잠을 자고 이윽고 수원함 함상에서 위문행사를 가진 것은 이튿날 오전 11시30분이었다. 김 시장과 김명수 수원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일행 그리고 함장인 L 중령 이하 전장병이 함께 한 가운데 A 대위의 힘찬 구령으로 국민의례, 경과보고, 환영사, 격려사 등이 이어졌다. 아! 그런데 푸르른 해상에서는 돌고래 쇼 같은 물고기 떼 쇼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우리의 위문행사를 축하하는 듯 무리지어 뛰노는 게 높이뛰기 대회를 방불 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군항에서는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않으므로 이처럼 갖가지 물고기가 모여들어 물고기천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위문품으로 진공청소기, 벽걸이 텔레비전, 신간 도서 등 6종에 34점이 전달됐다. 이 위문품은 수원함이 필요로 한 것을 미리 알아 준비한 것으로 773만원 상당의 것이다. 수원함은 뜻밖에도 저소득층 장학금에 보태 써달라며 50만원을 답례로 기증하는 것이었다. 이 돈은 함정안에 둔 자판기 수익금이어서 금액을 초월한 수원함 장병들의 따뜻한 사랑이 깃들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흐뭇한 것은 위문행사를 갖는 동안 다른 함정의 장병들이 연달아 손을 흔들어 반기면서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해군 작전사령부 소속의 수원함은 1천100t 규모의 전투함으로 ○○○억원을 들여 건조되어 취역과 동시에 명명됐다.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지가 여러해 된다. 그런데도 우리 지역사회의 이름을 딴 전투함이 우리의 영해를 지키고 있는 영예로운 사실을 아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게 안타깝다. 진해 군항에는 수원함 이외에도 많은 군함이 있었으나 그냥 정박해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군함은 작전 나갈 출항 준비를 하고 어떤 군함은 작전을 마치고 막 귀항해 있기도 하는 그야말로 영해 일선의 초병들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의 영해 방어는 곧 국방의 요체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날 전 수원함 함장 C 중령 부부가 개인적으로 기념품까지 갖고 해군회관에 들러 반겨주더니 이튿날 위문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도 나와 환송해 주는 것이었다. 수원함 함장 이하 장병들이 도열한 환송대열 한켠에서 우리가 타고 떠나는 버스를 보면서 손을 흔들어 준 진한 정경은 감동적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가 떠날 때까지도 A 대위 부인의 해산 소식을 듣지 못했던 점이다. 비록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자랑스런 해군 장교의 아내로 건강한 아이를 낳아 잘 키우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위문단 일행엔 시·도의원들도 있었지만 주로 여러 계층의 시민들이 함께 한 것은 실로 범시민적 의미가 깊었다. 시민 일행 중엔 아들이 해군사관학교 사관생도인 장한 어머니가 있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위문행사의 마지막 코스로 해군사관학교를 견학하고 귀향버스에 올랐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 식사는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서 우동으로 때웠으나 배고픈 줄을 몰랐다. 나들이 길에서 돌아와서인 지 새삼 내집처럼 포근한 정감이 가는 수원시청에 도착한 게 초저녁인 데도 일행의 얼굴은 마냥 밝은 표정들이었다.
/이지현 (사)한길봉사회 경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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