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박찬호와 이치로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우방인가, 적인가, 잠재적인 경계의 대상인가. 이런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인접국들, 특히 중국,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데에 비해 우리의 자세는 너무도 안이하다는 현실에 있다.

우리 국민의 자존심 박찬호가 올해에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야구의 영웅 스즈키 이치로에게 금년은 꿈같은 한해였다.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한국은 기울고 일본은 일어나고 있다. 정녕 스즈키는 뜨는 해요, 박찬호는 지는 해인가. 과연 그런가.

일본은 오랜 장기불황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불안한 정치정세와 각계각층의 어지러운 요구의 소화라는 걸림돌 때문에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정녕 일본은 다시 일어나고 한국은 가라앉고 있는가. 과연 그런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무작정 일본을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는 일본에게 당한 치욕의 역사를 보상받으려는 잠재심리와, 전통적으로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멸시하여 온 문화우월감에서 비롯된 뒤틀린 감정의 소산이다. 때문에 우리 국민들에게 박찬호의 우울한 침몰과 스즈키의 화려한 浮上은 너무나도 가슴 죄는 경험이다.

우리 국민의 단점은 매사에 너무 조급하고 즉흥적이라는 데에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인은 매우 꼼꼼하고 준비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박찬호가 20승 가까이 올리면서 축배를 들고 있을 때, 스즈키는 골프공을 연습볼로 때리며 꾸준히 앞날을 대비해 왔다. 스즈키가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세우면서 야구의 종주국 미국을 크게 놀라게 한 밑바탕에는 일본식의 철저한 자기관리가 들어 있었다. 일본의 저력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함께 치밀한 계산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도 이제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워 본받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주변의 강대국-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네 마리의 코끼리들로부터 우리를 지킬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시점에 와있다. 타산적인 일본은 즉흥적인 우리에게는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스즈키식의 훈련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금년 들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참여정부 들어서면서부터 국민경제가 삐걱거리고 우리사회의 화합에 금이 가고 있다.

박찬호처럼 우리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는 해나 무너지는 탑을 바로 잡을 길은 없지만, 애써 불안을 떨쳐 버리려는 것은 책임회피이다. 일단 추락하고 나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

한국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없어지고 ‘나’만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국가’나 ‘사회’라는 ‘우리’는 실종되고 ‘小我 小集團의 우리’, 즉 ‘확대된 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해당사자끼리는 부딪치기 일쑤이고 파열음만 진동한다. 걱정스러운 이러한 모습이 어쩌면 백년전 왕조말의 망국시기와 그리도 닮아 있을까.

우리 주변에 우방만 있으리라는 어설픈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일본도 우리의 우방이라고 보기 어렵다. 중국이나 러시아, 심지어 오랜 맹방인 미국도 자국의 이익에 충실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유독 우리만이 내부갈등속에 설익은 자신감을 내어 보여 오지나 않았는지 크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단점을 빨리 버리고 우리가 혐오해 왔던 민족의 장점을 배우고 닦아서 다가올 앞날의 시련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찬호가 화려했던 어제의 박찬호가 아니듯이, 우리 민족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지금 정신 똑바로 차리고 크게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제 와서 다시 어두운 60년대의 그늘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종 선 경기도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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