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종 칼럼/보통 ‘아줌마’인 주부들에게

세상에는 보통 커리어우먼이라고 불리는 여성들도 많다. 전문분야에서 자기 실력을 인정받고 뛰고자 하는 자아를 끊임없이 구현해 내고 있는 여성들이다. 가부장 권력이 지배하는 이 사회가 용납한 커리어 우먼은 전체 여성인구에 비례해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 남성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권력의 부스러기 중 일부만 나누어 준 셈이다. 따라서 가부장 권력사회는 남성권력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커리어 우먼을 인정하고 키운다. 나머지는 대다수가 가사를 돌보는 보통 아줌마인 주부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은 가부장이 일터로 나간 집을 지키고 육아 등의 잡사를 돌본다. 사실 잡사라 함은 가정에 남아있는 주부의 입장에서 뱉어 내는 자조적 단어다.

아무리 현대문명의 이기들이 가사노동의 강도를 최소화했다지만 주부의 손에는 하루도 물기 마를 날 없다. 거기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쏟는 세심한 배려와 정성까지 합해지면 종류도 다양한 잡사다. 문제는 바로 이처럼 보통 아줌마인 주부의 일이 소위 커리어 우먼들처럼 전문적인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잡사라는데 있다. 아내들은 여자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주부의 잡사인 반면 커리어 우먼은 선택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TV 등 매스미디어는 한 술 더 떠서 커리어 우먼은 화려하고 빛나게, 주부는 초라하고 빛바랜 존재로 대비해 놓기 일쑤다. 그러니 우리 주부들의 상대적 좌절감과 비애감은 더욱 커져갈 수 밖에.

그래서 최근 여성관련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주부들의 불만과 한숨이 쏟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문직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만 보면 주눅이 들고 자신이 인생의 패배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편도 상대적으로 화려한 그들을 좋아한다.’ ‘아이들 챙기고 평생 남편 내조하느라 보냈는데 남는건 소외감이다.’ 이같은 푸념이 급기야 ‘결국 나도 인생의 성취를 위해 무언가 해야 겠다’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세간에 물의를 일으켰던 피라미드 판매사기 사건 등은 보통 주부들의 이러한 사회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부산물이다.

그러나 이 땅의 보통 아줌마인 주부들. 과연 그대들은 인생의 패배자인가. 아니다. 육아 등 가사 일은 아낙네의 일이라고 무책임하게 팽개쳐 버린채 자신들만이 자유 혁명 민주 근대화의 높은 이념을 구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남성사회는 지금 스스로의 모순으로 다 무너져 버렸다. 그대들은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집 밖으로 나간 남편 대신에 이 순간까지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소중하게 지켰다. 수직과 폐쇄와 독점의 권력이 판치는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들 또한 대부분 패배자가 되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그대들 앞에 누이고 따듯한 보살핌을 받는다. 또 하나의 세상인 우리 아이들도 당신들이 지키고 키워왔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오늘의 이 세상은 육아 등의 일은 당신들에게 맡기고 거창한 구호나 외치고 다닌 남성들이 지킨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사랑과 희생으로 지키고 이어져 오게 한 것이다. 결국 커리어 우먼의 탄생도 이 지킴이 정신 앞에 무너져 버린 남성사회가 미안한 마음으로 던져준 떡 몇 쪼가리에 불과 할지 모른다. 남성사회는 이제 종언을 고했다. 그대들이 지켜낸 세상을 홀로 독점하기에는 남성들도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일궈낸 소중한 가치의 힘을 통해 누구나 주부이고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앞당겨 질 것이다. 수평과 분산의 소중한 가치를 이루어낸 그 힘의 원천이 아줌마인 당신들 속에 있었음을 그대들도 알아야 한다. 변화를 상상하면 ‘아줌마’도 행복하다.

/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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