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제3국으로부터 한국행에 성공한 탈북자들, 공항에서 연수원으로 가는 버스행렬, 버스커튼을 살짝 열어재친 차창 틈 밖을 바라보는 어린이며 젊은 아낙, 중년의 남정네들 얼굴 표정이 무척 밝아 보인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저토록 희망을 갖는 탈북자들에게 얼마나 기대에 부응해 줄 수 있을까 해서다. 하필이면 경제가 바닥을 기는 이 즈음에,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이 시기에 오는가 하는 마음도 든다.
비행기로 실어 날라야 하는 450명의 탈북자 무더기 입국은 앞으로가 더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월남을 귀순이라고 하여 칙사 대접하던 일은 이제 호랑이 담배먹던 옛 일이 됐다. 근년들어 해마다 1천명 가량의 탈북자들이 입국한데 이어 이젠 비행기 떼기가 되었다. 이러다가는 몇 천명씩 태우는 수송선 동원이 필요할 수가 있다.
1990년 10월3일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에서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간 난민이 500만명이 넘는다. 겹겹이 경비하는 155마일 휴전선 철조망이 아닌 단순한 남북간 장벽이라면 제3국이 아닌 직접적 남행 탈북이 아마 동독처럼 사태날 것이다.
탈북자가 이래서 아무리 늘어도 북의 평양 정권은 동독처럼 곧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휴전선의 지상군을 비롯한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다. 대륙간 탄도탄(ICBM) 등 미사일은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하고 생화학 무기 보유량은 5천t으로 세계 3위다. 여기에 핵무기 개발로 미국을 조롱하고 있다. 북의 군비 지출은 국민총생산(GNP)의 21%로 세계 2위며 남은 3.6%로 50위다.
북녘 땅에도 암시장이 생기고, 평양 시내에선 노래방에 폭탄주를 함께 마시며 춤도 추고 ‘홍도야 울지마라’ 같은 가요를 부르는 도우미 여성도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지극히 제한적일 뿐 여전히 공산주의이기 보다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하는 ‘김일성주의’가 공고하다.
통일은 실로 예측키 어렵다. “손자 때나 통일이 될 것으로 알았던 것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는 것은 통독 당시 동독 정부의 각료를 지낸 사람의 말이다. 남북 통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북의 군사력이 단단해도 자유의 바람을 대대손손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소련 붕괴의 정신적 저변이 미국풍의 청바지 바람에서 시작한 것은 참으로 되새겨 음미할만 하다.
그러나 통일은 엄청난 통일비를 수반한다. 독일은 통일후 6년동안만 해도 동독지역에 사회간접자본, 사회복지비, 환경개선 등에 무려 500조원에 해당하는 1조마르크를 쏟아 부어야 했다. 언젠가는 실현될 남북통일도 이같은 통일비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통일은 더할 수 없는 가치성이 있지만 예를 들어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해도 통일비 감당이 큰 난제다.
남북 공존공영은 자연스런 평화 통일이 성숙되는 시기까지 서로가 민족역량을 배양하자는 것이다. 프랑스 르 몽드지 등 외지나 국제단체가 외국의 구호식량이 주민에게 제대로 배급되지 않는다는 의문을 제기하곤 하지만 그래도 북에 식량을 보내고 물자를 지원해야 하는 연유가 이에 있다.
이런 실정에서 제 나라 인민들이 살지 못하겠다며 도망친 탈북자들이 비행기 떼기로 남행을 하여 부담을 안기면 부끄럽게 여기고 미안해 해야할 사람들이 되레 큰소리 친다. 금강산 행사에서 북측 사람들이 탈북자 문제로 정부를 맹렬히 비난한데 이어 곧 열어야 할 15차 장관급 회담도 불응할 태세로 시큰둥 하고 있다.
정부는 탈북자 문제로 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이 북측은 우정 더 한다. 남북간 문제는 당당히 해결하는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첩경이다.
걱정은 있다. 북녘 사람이 아니라 남쪽 사람에 대한 걱정이다. 남북 문제에 사사건건 북을 두둔하여 남남갈등의 부추김을 일삼는 이상한 세력이 있다. 이들은 차라리 여기서 그러지 말고 그렇게 좋다는 북에 가서 살고, 정부도 이주 허가를 해 주는 방법의 검토가 있으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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