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명품 선호의식이 단순한 취향을 넘어 거의 ‘중독’상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달인가 모대학 여교수가 핸드백을 잃어버리고 신고하는 장면에서 6천300만원을 신고하였다는 뉴스를 접하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그 핸드백 속에는 필자로서는 보지도 못한 명품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또 입시부정으로 조사받은 어느 교수 집에 명품 가방들이 진열되어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교수들도 이럴진대 한창 나이의 청소년들이야 말할 바가 무에 있으랴 싶었다.
지난해에 유럽으로 여행을 간적이 있었는데 아이쇼핑을 하는 필자 눈에 비친 손님들은 대부분 중국인과 한국인들이었다.
외국공항의 면세점에서, 해외 쇼핑몰에서, 그리고 소위 명품거리에서 값비싼 유명 브랜드를 찾는 사람들은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이다. 500달러가 넘는 핸드백이나 천달러가 넘는 롤렉스 시계를 주저없이 집어드는 한국 여인들의 큰손 덕분에 세계의 명품 판매점들은 오늘도 떼돈을 벌고 있다. 그게 어디 여자들뿐이랴?
명품 술 좋아하는 한국남자들 덕택에 대한민국은 오늘날 최고급 위스키와 코냑의 최대소비국 중 하나가 되어 유럽의 주류회사들은 한국 수출용 상품까지 별도로 제작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가끔 해외에 나가는 편이지만, 그럴 때마다 소위 말하는 명품가게에 들를 때가 참으로 싫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명품가게로 안내하면서 실속을 챙기려는 가이드라는 사람들이 얄밉기까지 하다.
물건을 사지않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좀 불친절한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귀중한 시간과 외화를 들이면서 온 해외여행을 그런 식으로 낭비시키는 그들이 솔직히 밉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명품을 사러 나왔다고 말한다. 비행기표가 빠진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명품 자랑하기에 바쁘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소외되면서 때론 그들을 마음 속으로 다소 조롱하면서 다시는 해외여행 다니지 않겠다고 하다가 또 때가 되면 공연히 마음이 산란스러워 여행길로 나서는 나. 나도 어쩌면 여행명품족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사회에서는 외적 조건이 바로 그 사람의 신분과 인품을 결정한다. 그래서 취직을 하기 위해, 결혼을 잘하기 위해, 성형을 하고, 자신을 치장해 줄 명품을 사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러한 명품의식은 일류대학병이나 유학붐과도 맞물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벌어지는 입시 전쟁 역시 한국 특유의 명품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명품 대학 간판이 있어야 일류 직장과 일류 배우자를 가질 수 있고, 잘 나가는 일류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동안만이라도 생각해 보자.
그러한 명품을 사기 위해 내가 치러야 할 시간과 돈과 노력은 과연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대가는 과연 얼마나 만족스러운 것인지를. 성형을 하고, 최고급의 명품으로 치장하고, 일류 간판을 따기 위해 그 치열한 경쟁을 하고… 그런 것들이 과연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는가? 풍요롭게 해주었는가?
물론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명품의식은 신화 속의 벌레처럼 더 많은 허상과 허영과 사치로서 그 주인을 갉아먹을 것이다. 남는 것은 피폐된 영혼과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중독증뿐.
/김현옥.수원 수일중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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