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문제가 헌법재판소의 기각판결로 끝이 났다. 여야 모두 앞으로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산적한 문제들을 고려할 때 말처럼 순탄할 것 같지마는 않다. 우선 여야는 국무총리 임명을 놓고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우리당에 입당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여야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국무총리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는 본래 의원내각제 통치구조에 적합한 제도인데 헌법제정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대한민국 헌법에 도입되었다. 상해에서 귀국한 임시정부 세력들은 자신들이 채택해왔던 의원내각제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부형태로 주장하였고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측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당시는 미군정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이승만 측의 주장이 대부분 채택되었고 임시정부 세력은 유명무실한 국무총리 제도를 헌법에 삽입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렇게 도입된 국무총리 제도는 30여년의 군사정권과 김영삼 정권에서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비판을 막는 방탄용으로 사용되어 왔고 김대중 정권에서는 DJP연합의 권력분점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국무총리 제도는 정치적 민주성과 행정적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국무총리가 대신 책임을 졌기 때문에 대통령은 실정을 저지르고도 계속 집권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탄핵사태와 같이 대통령 유고시 국무총리가 대행하는 것도 민주주의 원리상 큰 문제다. 국무총리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데 이렇게 민주적 정통성이 낮은 사람이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로서 국정을 총괄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에는 다행히 큰 일 없이 넘어갔지만 국민들의 신체와 재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위기나 전쟁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국무총리의 낮은 정치적 정당성으로 인해 상상하기 힘든 정치적 혼란이 초래되었을 것이다.
행정적 측면에서도 국무총리 제도는 비효율을 초래한다. 헌법에 규정된 국무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능은 차관회의, 경제차관회의, 경제장관회의,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 국무회의, 청와대비서실 같은 다양한 기제에 의해 수행되고 있어 국무총리실은 사실상 정책결정의 속도만 지연시키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책임총리제를 주창하면서 국무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이양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최근에 청와대비서실의 정책조정기능을 다시 강화하여 국무총리실을 더욱 더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제반사항들을 고려할 때 다음 헌법개정에서는 미국식 정부통령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여 국무총리직을 폐지하고 국민들 다수의 지지를 받은 부통령이 대통령 유고시에 권한을 대행하게 하거나 아니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여 대통령직을 폐지하고 국무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태수.경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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