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과 상생의 시대’, ‘분열 극복’, ‘사회통합으로 국력결집’, 이 시대에서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기각 결정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이 며칠새 이토록 좋은 말을 했다.
그러나 처음 나온 말은 아니다. 전에도 종종 했던 말이다. 전에 했던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은 한 말이 말처럼 제대로 안되고 있는 탓이다. 이유가 뭘까?
‘화합상생’ ‘분열극복’ ‘사회통합’은 상대를 용서하고 포용해야 가능하다. 상대의 굴복을 요구하는 ‘화합상생’ ‘분열극복’ ‘사회통합’의 수사는 공허하다. 대통령은 원칙을 많이 강조한다. 원칙이란 상대가 인정하는 원칙이 되어야 설득력이 객관화한다. 내가 정한 원칙의 주관에 복종을 은유하는 자아 중심의 원칙 관념은 힘(권력)의 행사일 뿐이다. 예컨대 토론은 나의 생각을 상대의 말에 따라 바꿀 수도 있어야 토론이다. 상대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만 주입시킬 요량인 토론은 이미 토론이 아니다.
승부사의 기질은 타고 났다. 정치인의 입신 과정도 그렇지만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그리고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숨가쁜 숱한 승부의 고비, 그리고 또 중첩된 관문의 돌파였다. 난관 돌파의 위기관리 뚝심은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 전날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적당히 사과해서 적당히 넘기라고 한다면 이는 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탄핵이 제기된 소추가 불발되어 업무에 복귀한 대통령을 두고 ‘날개를 달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호랑이가 날개를 단 면모는 소추기각 결정 이튿날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정중하면서도 당당하였다. 다 좋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위기로 보는 것이 위기를 과포장하여 더 부추기는 것으로 인식한 것은 유감이다. 국고채 잔액은 94조4천억원으로 늘어 (경제정책의 버팀목인) 재정이 급속으로 악화되는 가운데, 워크아웃 기업은 절반 가까이 돈벌어 이자도 못내고, 신용불량 기업은 (경영난 심화로) 13만여개에 이르며, 서민들은 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연속 4개월 째의 생필품값 폭등세로 비명이 속출하고, 가계부채가 가구당 평균 3천만원을 돌파한 가운데, (경제회복의 최대 걸림돌인) 신용불량자 370만명에 잠재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달하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으며, (미국으로도 모자라) 중국 총리의 말 한마디에 경제가 휘청거리는 속에서 내수부진은 여전하고, 비정규직 차별 해소가 (올 노사문제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마당에 이를 위기라고 하는 게 위기를 부추긴다고 한다면 대통령이 보는 진짜 경제위기의 시각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객관화 되지 못한 자아 중심의 원칙 관념에 기인하고 이는 또 체질화한 승부사 기질에 기인한 것으로 보아진다. 하지만 개혁은 뚝심이 작용될 수 있는 정치가 아닌 건 개혁은 곧 민생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마다 할 이유가 없는) 개혁이 아니고 개혁에 대한 원칙의 객관화다. 그리고 이는 균형 감각이다. ‘화합상생’ ‘분열극복’ ‘사회통합’ 등 이 역시 다 균형감각의 판단인 것이다.
촛불시위의 평화적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것은 능히 인정된다. 그렇다면 탄핵지지의 평화적 시위 모습에도 타산지석의 느낌을 가졌어야 한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의 촛불을 든 군중도 대통령의 국민이고, 탄핵 지지의 피켓을 든 군중도 대통령의 국민인 것이다.
관저 칩거의 직무정지 63일은 실로 울분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이런 것을 원했다. (업무에) 복귀하면 소신있는 변화가 있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은 그런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당장의 경제난 타개 해법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화합상생’ ‘분열극복’ ‘사회통합’은 대통령이 작심만 하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나만의 주장이 아니고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참다운) 화합과 상생의 시대를 여는 길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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