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렇게 질타했다. “젊은이들은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도전에 너무 무관심하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좋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과 근사한 집 뿐이다”라고 했다. 고촉통(吳作棟) 싱가포르 수상의 말이다.
어느 삼류 영화의 장면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힘을 내세운 남자의 폭력에 전전긍긍하던 여자가 재빨리 주방의 칼을 낚아 움켜잡고 남자의 목에 들이댔다. 상황은 역전됐다. 여자는 복수심에서 자신의 발등을 혀로 개처럼 핥으라 했고, 예리한 칼끝의 감촉을 목덜미에 느낀 남자는 ‘킹킹’대는 소리를 내며 시키는대로 했다. 형편이 불리하면 이런 수모도 감내하면서 위압적 폭력을 앞세우는 것은 정말 못난 짓이다.
말로는 큰 소리치는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과 근사한 집을 갖기위해 패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싱가포르의 사정인 것 같다. 잘난 척 하다가도 어떤 잇속에서는 한량없이 비겁할 만큼 나약한 폐쇄적 현실 탐닉을 싱가포르 수상은 개탄한 것이다.
이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도전에 너무 무관심하기는 우리의 젊은이들 역시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신시대의 주역임을 자처하면서도 새로운 비전은 커녕 구시대가 개척해 놓은 지식산업의 먹거리만 축내고 있다. 개혁을 말하면서도 남이 안보는 데선 여자의 발등을 개처럼 핥아낸 그 남자 못지않은 추악한 짓을 일삼는다.
앞으로 10년, 20년 뒤엔 뭘 수출해 먹고 살 것인 지 지금의 처지로는 실로 막막하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내고 나면 거대한 경제공룡의 면모를 드러낼 것이다. 이를 위해 버릴 것은 미련없이 버리고 끌어들일 것은 과감히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에 대해 갖는 국내 일부의 우월감은 큰 착각이다.
일본은 10년 뒤면 완전히 우경화한다. 세계 정상급 장비로 무장된 강병의 자위대는 ‘자위대’ 명칭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정식 군대로 개편될 것이다. 일본의 장래를 평화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토인비는 일찍이 ‘역사는(나사 모양의) 나선형(螺旋型)으로 발전한다’고 하였다. 북 핵 관련의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불가피하긴 하다. 하지만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의 참여는 마치 100여년 전에 있었던 열강의 각축을 연상케 한다. 또 반미·친미니 하는 가운데 들먹이는 자주·민족공조의 어휘 범람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순의 시대다. 지난 19세기 말에 겪었던 모순의 시대를 21세기 초 들어 토인비의 말과 같이 한 단계 더 올라 제자리에 돌아온 나선형처럼 또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당했던 나라의 불운을 절대로 되풀이 할 수는 없고, 이를 거부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젊은이들이다. 탄핵정국의 찬·반이 어떻게 끝나든 이로 인하여 나라가 거덜나진 않는다. 젊은이들이 시대의 정체성을 잃을때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좋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과 근사한 집을 갖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므로 젊은이들의 이런 현실 추구를 탓할 수는 없다. 설령 당장은 백수일지라도 젊은 인생이 그대로 끝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삼류 영화의 남자 주인공 같은 젊은이가 되어선 도태의 표적이 된다.
진보는 개혁이고 보수는 수구인 것처럼 말하는 세태이지만, 반면에 진보의 수구세력이 있는가 하면 보수의 개혁세력도 있다. 이를 잘 헤아리는 것이 이 시대의 시대적 정체성이다. 시대의 변화는 감성적 변화가 아닌 이성적 변화다. 이를 가리지 못하면 진보도 보수도 말 할 수가 없다.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미로만을 헤맨다. 좀 더 나라안 일을 통찰하고, 좀 더 나라밖 사정을 관찰할 줄 아는 깊은 시각과 넓은 시야와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젊은이들이여! 가슴을 열고 창공을 바라보라! 그 속에 자신의 젊음이 존재함을 발견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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