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신행정수도, 가당치않다

나라의 수도를 은근슬쩍 옮기려 하는 희대의 마술극이 벌어지고 있다. ‘신행정수도’란 말부터가 당치않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국회도 옮기고 대법원도 옮기려고 한다.

이건 수도를 옮기는 것이다. 이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신행정수도를 만든다’고 한다. 개념 정립부터 국민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말농간이다. ‘수도이전 건설 특별법안’이라고 하면 알기는 쉽지만 듣기에 저항감이 강하다. 이래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안’이라는 둔사로 얼렁뚱땅 해치우려고 한다. 수도 서울이 비대해져 도시공학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정부 예산의 40~50%에 해당하는 45조에서 60조원을 들여 인구 50만명의 신 수도를 만들어 천도하기 보다는 열배 백배나 더 낫다.

‘천도’를 ‘신행정수도’로 포장한 기막힌 주술은 충청권엔 뭔가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비충청권에는 설마하는 둔감 속에 대선을 치르게 만들었다. 노 대통령 그 자신의 말처럼 정치적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이제 그 재미를 내년 총선까지 두벌 수확 타작을 해 맛보려고 한다.

한심한 것은 정치권이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당이니까 그런다손 치더라도 명색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엉거주춤 끌려가고 있다. 자민련이야 충청도당이니까 또 그런다손 치더라도 민주당마저 수서양단의 눈치놀음에 바쁘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이런 작태는 충청권의 총선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무소신의 처세주의로 더 큰 손실을 보는 자충수가 된다.

대통령은 지역구도를 낡은 정치로 매도하면서 이처럼 낡은 정치를 교묘히 역이용한다. 또 충청권 전 지역을 대상으로 미끼삼은 신행정수도가 가령 총선이후 어느 지점에 막상 낙점된다 해도 충청권 전역에 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충청권의 발전은 신행정 수도라는 신기루 같은 꿈과 꿈의 좌절이 아닌 가시적인 다른 실질대책으로 대체돼야 한다.

신행정수도를 반대하는 데 대해 어떤 비난도 두렵지 않는 것은 일국의 수도는 정략이나 편견에 의해 옮길 수 없다고 보는 부동의 확신 때문이다. 이 정권은 대선공약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지만 당치않다.

당선자의 공약은 어디까지나 포괄적 사항일 뿐, 개별적으로 다 용인된 것은 아니다. 공약 중 손도 안된 게 수두룩하면서도 신행정수도를 우기는 것 부터가 다분히 정략이다.

이 정권이 그래도 강행하고 싶다면 먼저 국민적 합의를 구해야 하고 국민투표는 이를 묻는 좋은 방법이다. 천도 문제야 말로 헌법이 정하고 있는 국가안위에 관한 주요 정책 사항인 것이다. 무슨 위원회를 두는 관제 들러리 구성은 구색 맞추기일 뿐, 국민적 합의 도출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대통령은 되지도 않는 재신임 국민투표 같은 것 보다는 천도에 대해 정작 국민투표를 통해 물어야 한다.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안’은 마땅히 폐기 돼야 하는 것으로, 다루어도 다음 17대 국회에 넘기는 것이 좋다. 만약 이 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된다면 소신없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유권자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국내외에 화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국민총소득은 외환위기 직후인 1988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에 비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런 판에 천도를 화두삼는 소모적 논쟁을 벌여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신행정수도’란 게 지닌 상황적 함정을 말하다 보니 ‘신행정수도’ 자체의 원칙적 허점에 대한 이론 전개가 미흡한 대목은 나중에 따로 더 언급하겠다. 다만 한가지 이 시대의 남행 천도 정략은 민족적 죄업임을 분명하게 밝혀 둔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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