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노무현과 케네디

우리에겐 왜 이런 대통령이 없을까.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그가 1963년 11월22일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오스월드의 총탄에 맞고 암살된 지 40년이 된다. 미국의 지성들이 40주기 행사로 들뜬 추모 열기는 무엇인가, 미국의 자존심을 극대화한 그의 지도력을 아쉬워하는 회고 열풍이다. 역사학자 로버트 댈럭 보스턴대 교수는 케네디를 미국 역사가 위인 대통령으로 꼽는 워싱턴, 링컨, 루스벨트와 같은 반열의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뉴프론티어, 국민의 자존심에 호소하는 국내 개혁과 자유 세계의 지도력 확립은 실로 위대한 리더십이었다. 카리브해의 해안봉쇄에 이어 쿠바에서 소련 기지를 강제 철거하는 용기있는 결단을 보였다.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도 냉전 해소에 주력하는 미·소협조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현실과 비유해 본다. 케네디나 부시는 다 같이 힘을 구사했다. 그러나 쿠바 기지의 강제 철거는 매끄럽게 마무리된데 비해 이라크 문제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다. 부시에게 실망한 미국 지성인들은 이래서 케네디를 더욱 흠모한다.

케네디를 돌아보는 것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1960년 대통령 당선후 국민에게 충격을 준 것은 브레인 스태프의 의외성이었다. 백악관과 행정부를 젊은 지성인들로 꽉 채운 것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강력한 개혁정책은 참신한 돌풍을 일으키면서 크게 성공했다. 예컨대 인권법안을 의회에 통과시켜 인종 차별을 철폐한 인도주의적 결단은 영원한 우상이다.

노무현 청와대의 386세대 같은 잡음따윈 나질 않았다. 아마추어 브레인이라는 소리도 나지 않았으며,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젊은 사람들이 수구세력 뺨칠만큼 돈을 좋아한다는 소리도 나지 안했다. 케네디의 개혁정책은 젊은 브레인들에 의해 박진감있게 추진된 반면에 노무현의 개혁정책은 무식한 젊은 코드들로 인해 허공속에 실종됐다. 대통령부터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했던 케네디처럼 당당하지 못하다. 그저 측근당의 표가 될성싶으면 농촌 부채도 깎아주고 신용불량자 빚도 탕감한다는 등 당치않은 선심만 남발한다. 어느 선무당으로부터 가만히 있어도 부자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바보가 그 말만 믿고 일도 않다가 되레 쫄딱 망하고 나서 무당을 찾아가 항의했다는 우화가 있다.

케네디는 진보주의자다. 그러면서도 당시 소련의 팽창주의에는 강경하게 대처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해서였다. 그는 온건파 진보주의자였던 것이다. 대통령 역시 진보주의자다. 지금은 소련이 없다. 잘 알 수 없는 것은 대북관계에서 어떤 진보주의냐라는 것이다.

미국은 케네디 40주기를 앞두고 텔레비전 특집, 학회발표, 전시행사 등이 추진되는 한편 수많은 관련 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이처럼 그리워할 전직 대통령이 없다는 사실이다. 흔히 박정희를 말한다. 굳이 꼽자면 그럴만 하다. 오늘의 경제성장이 있게 된 것은 그의 근대화 위업 덕분이다. 그래서 개발독재는 인정된다. 하지만 유신독재는 인정될 수 없다. 권좌에서 치부할 줄도 몰랐던 그였으나 드러내 놓고 추모할 수 없는 갈등이 이에 연유한다.

케네디가 살았으면 여든여섯살의 노옹이다. 그런데도 미국민들에게는 아직도 마흔여섯의 패기넘친 젊은 대통령으로 각인돼 있다. 그가 대통령이 재임한 것은 임기 4년도 다 못채운 3년인데도 이토록 신뢰받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는 국민에게 더욱 강도 높은 인고와 땀을 요구한다. 그 대신 땀의 결실을 국민의 영광으로 반드시 돌려 주겠다”는 대통령 말을 듣고 싶다. 두려운 것은 인고와 땀이 아니라, 민중의 노력이 헛되고 있는 무능한 현실이다.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선무당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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