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등 공연물 중 나에게 있어 혐오대상 일호는 폭력물이다. 와중에도 SBS 방영 ‘야인시대’만은 빼놓지 않고 즐겨 보았다. 드라마가 흥미진진해서가 아니었다. 어렸을때 몸소 보고 겪은 사건들이라 감회가 남달랐던 탓이다. 본디 정치 지향성이 강해서였던지 장충단공원 집회방해 사건 때도 연단 근접 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김두한을 앞세운 야당 의원들 데모를 지켜보는 박진감과 스릴 등도 무수히 맛보았다.
당시 이정재를 우두머리로 하는 동대문 사단이 착각을 범한 것이 하나 있다. ‘권불십년’인 법인데, 자유당 세도가 마르고 닳도록 갈 줄 알고 경거망동한 사실 말이다. 최근 현안과 맞물려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의 돌출로 노 대통령이 큰 곤혹을 치르는 눈치다.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가 그것이다. 이를 둘러싼 찬 반 양론 속에서 노 대통령은 진퇴유곡에 빠져 있다.
노 대통령은 국군의 날 행사에서 ‘자주국방’ 의지를 천명하고 이라크 파병을 북 핵 평화 해결과 연계할 의향임을 밝혔다. 모처럼 그다운 말을 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슬럼에 빠지는 통에 주춤하긴 하나, 미국 부시 행정부가 강경파에 휘둘려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불사하려는 마당에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의 결연한 의지의 표명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일방주의 외교로 약소 나라들을 울려 ‘국제 사회의 망나니’로 손가락질 받는 미국이 길들이기 쉬운 약소 나라들에 대해 선별로 하는 파병요청은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 이라크 종전 선언이 있은 지 9개월이 지났다. 전쟁의 빌미로 삼았던 대량살상 무기와 탈레반과의 연계혐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침략전쟁임을 뚜렷이 입증한 셈이다. 이라크인의 거센 반발로 미군 사상자가 속출하자 미국은 한국군을 총알받이로 써먹을 궁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국군 파병에 침략국 미국과 한국 내 추종세력은 쾌재를 부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슬람권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이 어떨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특검법 공포와 친미 행각 등으로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무너지는 마당에 실익도 없이 추가 파병을 하면 지지계층 가운데 노 대통령을 명분론자로 여기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주의자의 아류로 볼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미국에게 꼬리를 흔들어대는 ‘푸들’이 돼 침략국에게 악용 당하고 젊은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가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악이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긴 하지만, 로마 제국의 흥망사에서 보듯이 패권의 추구가 영원할 수는 없다.
맨해턴 가에 가해진 테러에 미국이 전쟁으로 대응한 것은 크나큰 불찰이다. 그간 팔레스타인들이 당한 아픔을 생각하여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이슬람권을 보듬어야 신이 보기에 합당했을 터다. “눈은 눈으로”라든가, “다른 나라 국민이야 죽든 살든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국민만이 소중하다” 라고 여기는 따윈 가다듬어지지 못한 생각이 원수를 사랑하도록 못 박혀진 문헌의 가르침에 친숙한 용어일 수 있는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는 법’이다. 미국은 테러전쟁으로 자멸의 함정을 파기 시작했다. 미국의 힘만 믿고 경거망동하다 제2의 이정재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석현.정신개혁시민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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