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로운 시대의 자녀교육

20세기말 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수많은 학자들은 지식기반사회를 위한 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식기반사회란 다른 가치보다도 지식의 가치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사회를 의미한다. 교육학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이러한 노력이 있었으며, 특히 미국 하버드대 가드너 교수의 견해는 새로운 시대의 자녀교육을 위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독자들은 네가지 유형의 아이들중 어떤 아이가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가. 첫째, 유창한 어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는 아이. 둘째, 어려운 수학문제에 도전해 과제집착력을 발휘하여 문제해결을 하는 아이 . 셋째, 절대 음감력이 뛰어나 바이올린 연주실력이 탁월한 아이, 넷째 안정환 선수처럼 축구실력이 뛰어난 아이…. 아마도 20세기적인 기준으로 가장 우수한 아이를 선택하려고 한다면 첫째 혹은 둘째 사례의 아이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화했음을 직감하고 있다면 잠시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 새로운 시대의 잣대로는 이 네 가지 유형의 아이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서열화할 수 없으며 모두가 다 각각의 영역에서 우수한 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언어, 논리-수학적 능력이든 음악적, 신체적 능력이든 모든 인간의 능력은 평등한 잣대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가 바로 가드너다.

그의 견해가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각이 과거의 언어, 논리-수학적 능력 일변도의 고정된 시각에서 탈피해 개개인의 개성 및 특유의 능력 등 평등한 평가관으로 바꾸는 순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릇된 교육관을 갖게하는 역기능적인 문제를 파생시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즉 그의 견해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다수의 부모들이 갖게된 새로운 자녀교육관중 하나는 ‘수학이든 음악이나 미술 혹은 체육이든 간에 어차피 모든 것이 지능이라면 일찌감치 하나만 정해서 하나만 교육시키자!’ 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의 뒷면에는 다른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도 괜찮다는 자기 위안적인 생각이 들어있어 후일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일찍 진로를 선택한 사람들이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하나를 선택하면서 발달적으로 너무 이른 시기에 다른 영역을 무시하거나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경우에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 너무 이른 시기인지에 대해서는 전공 영역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하나의 진로를 결정하고 다른 영역을 포기해 버리는 아이는 그 하나만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해도 단순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과정까지는 별 무리없이 견딜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려고 할 때는 분명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단순 지식이나 기술만으로는 창의적인 지식의 생산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조기에 특정 영역의 지식만을 편식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영역의 지식에 대한 고른 섭취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서 자녀교육의 출발점은 내 아이의 강점과 약점 영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는 자녀에 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이 선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간혹 어떤 부모들은 이것이 전문가들이나 할 역할이라고 판단해 성급히 특정 기관에 의뢰하여 내 아이의 여러 특성들을 수치화하는 작업을 먼저 서두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아이의 학교 및 일상 생활에서의 특성을 면밀히 관찰하거나 아이와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여 다양하고 폭넓은 자료를 수집한 다음 담임 교사나 교육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녀교육을 위한 방향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부터 조금씩 천천히 내 자녀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執着)

/박숙희.협성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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