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가재난 대비는 119 '소방청' 의 몫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순박한 우리 조상들이 다른 나라 민족에게 크고 작은 침략을 946회 정도 받았다. 그동안 나라를 위하고 후손들을 위해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침략자를 물리치고 나라를 찾아 세워 오늘을 있게하기 까지는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책임에서 오는 저력이 컸다.

일제 압제에서 해방이라는 기쁨을 누리는가 싶던 아버지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6·25남침을 당해 허술한 무장으로 전쟁터에 나가 피를 흘리고 죽어가야 했던 몫도 아버지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북은 승리자도 패자도 없이 철조망 하나로 갈려 반세기를 오지도 가지도 못하며 부모, 자식들에게 눈물의 세월을 만들어 준 것도 아버지들의 욕심 탓이었다. 그 욕심의 대가로 폐허가 된 남쪽이나 북쪽의 생활은 살아가기 힘든 50~60년대였다.

가난의 비참한 생활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국가 지도자의 결단은 아주 중요하였다. 그 결단은 바로 ‘자유 수호군’이란 깃발을 부여잡은 월남참전 용사들의 파병이었다. 젊은 용사와 아버지 용사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벌어들인 달러로 경제를 살려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한 사회는 서서히 긴장을 풀며 이제는 쉬자, 놀자는 생활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따라서 가난으로 움츠러 들었던 사람들은 생활의 여유로 정신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그 해이함은 서서히 사회의 대형재난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 대표적인 대형 사고가 71년도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으로, 한 사람의 부주의로 발생한 가스 폭발은 순식간에 고층까지 화염으로 뒤덮어 163명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가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 후에도 삼풍백화점의 붕괴, 성수대교 상판 붕괴,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및 방화사건, 서울 홍제동 주택화재 붕괴 등 인위적인 재난과 태풍 등 자연적인 재해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 대형 재난 사고 현장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해보려는 용감한 아버지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한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119 소방구조대’인 소방관이요, 아버지들이다. 소방의 사명과 책임 역할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며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는 ‘소방의 몫’을 과연 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수십 년간 피와 땀을 흘리며, 더욱이 고귀한 목숨까지도 바치며 오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평안한 행복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갖은 고통과 절망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인 소방으로 발전시킨 ‘소방관 아버지’들의 노고에 격려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런데 그러한 소방관들의 노고를 간과하고 국민들의 염원인 ‘소방청’의 신설을 재난관리청이란 조직으로 해 ‘소방의 몫’을 빼앗으려는 사고와 현실은 마냥 서글프기만 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고 싶다. “ 그대들이여! 당신은 화염 속에 갇힌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속에 뛰어 들 수 있는가?”라고.

각종 대형 재난사고 발생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급박하고 위험한 불과 유독가스가 가득 찬 연기 속 또는 물 속에서, 또는 절벽의 산 속에서 인명 구조활동에 피와 땀을 흘리며 악전 고투할 때 그대들은 넥타이 맨 양복차림으로 뒷짐지고 실적의 숫자나 챙기지 않았는가.

과학적이고 사명감과 책임감이 투철하며 고도의 훈련과 숙달된 능력으로 생명을 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소방관들을 믿고 ‘소방의 몫’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소방청’을 신설하는 것이 필연적이라 생각한다./한영석 (포천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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