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지난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전·현직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벌였던 낙선 운동은 한국 정치사에 있어 큰 사건이었다.
이중 ‘부정부패 사건 관련자’ ‘반개혁 행위자’‘지역감정 조장 발언자’로 찍혔던 인사의 경우 당시 상당수가 선거에서 떨어지는등 그 파장도 엄청났다.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 낙선운동은 그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위법으로 확인됐고 또 헌법재판소에서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명시된 낙선운동 금지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지금와서 볼때 낙선운동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낙선운동이 또다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국회앞에 모여 국군 이라크전 파병동의안 반대를 외쳤던 시민단체들이 지난 2일 우여곡절 끝에 이 파병동의안이 통과되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강력히 비난하며 파병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 방침을 밝힌 것이다.
노동계를 포함한 일부 시민단체는 “파병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기억할 것이며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낙선운동을 전개해 심판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응징(?) 차원의 성명서까지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사태가 이쯤되자 파병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의 경우 좌불안석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이 낙선운동의 위력을 이미 피부로 실감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파병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성명서도 만들어 지역 시민단체에 전달하며 자신을 낙선운동 대상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이 국정에 대해 자유롭게 의사를 발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정치인들이 자기 주장을 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입법·재정·기타 중요한 일반 국정에 결정적으로 참여하는 권능을 부여받은 국가기관인 국회에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국가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으로 부터 위임받은 그들만의 고유 권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복하고 또 위협하는 행위는 어떠한 설명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특히 파병안에 찬성한 의원이나 반대한 의원이나 모두 기본인식은 국익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시민단체가 낙선운동을 앞세워 정치권을 궁지로 몰고 간다면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자주적인 소신을 펼치겠는가.
누구든지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고 주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말이 있다. 1956년 당시 중국공산당 선전부장인 루딩이(陸定一)가 연설에 자주 쓰면서 유래한 중국 정치구호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유일하고 절대적인 사상으로 국민을 강요할 수 없으며 또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이 백가쟁명이 있었던 것이다.
/최 인 진 정치부 차장
ijchoi@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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