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난파와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위 노래는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귓가에 머무르는 ‘고향의 봄’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중얼거리며 복숭아꽃 살구꽃으로 대표되는 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준다. 더군다나 세월의 나이를 먹은 이들은 어린 시절 냇가를 뛰어 다니면서 개나리를 꺾고 소여물을 먹였던 마음속 ‘고향의 봄’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부르고 또 불러왔던 ‘고향의 봄’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그리움 속에 담긴 아름다움과 목 메일 듯한 안타까움은 부르는 이나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애잔하게 고향으로 향하게 만든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껏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일제에 나라와 고향의 따스함을 빼앗긴 슬픔을 달랬으며, 6·25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고향을 떠난 이들 가슴깊이 남아있는 노래인 것이다.

고향의 봄을 생각하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정겨운 마을의 아침 굴뚝으로 피워오르는 구수한 밥 냄새도 떠올리며 돌아오는 올 봄에는 꼭 가리라 못 가면 내년 봄에는 꼭 가리라, 다짐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봄을 시작하는 요즘 지난해 한 모임에서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 홍난파가 포함된 것과 관련하여 지난 28일 경기도음악협회 주최로 ‘난파 홍영후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 심포지엄’이 열려 다시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심포지엄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다듬고 걸러야 할 것들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발전적으로 논의를 한 후 이를 적용시켜 나간다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과를 분명히 하여 생애에 이러 저러한 이유로 ‘단순 친일행위’를 한 것과 한 사람의 모든 생애가 ‘친일파’로 단정 지어지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불가피한 일시적 친일로 인해 국가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산으로 평가될 수 있는 큰 업적들이 전면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홍난파의 경우 학계의 논란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 음악계에 혁혁한 공을 남긴 것은 물론이고, 방송국에 근무하던 중 흥사단 단가를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1936년 도산 안창호와 함께 일제로부터 심한 고문을 당한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는 올바른 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해 온 것은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기에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해를 가한 친일인사들을 가려내는 작업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적으로나 학계, 전문가 집단에서도 논란이 많은 인사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을 기해 검증을 거치는 일에 노력을 할애하였다면 보다 올바른 친일청산이 이루어 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에 대한 애절함과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민족이 ‘고향’이라는 단어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도 매년 설날과 추석 때 고생길을 헤치고 고향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봄 우리의 정다운 고향에 따사로운 봄이 돌아와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앞동산을 거닐며 ‘고향의 봄’을 부르는 일을 망설여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강성구 국회의원(오산.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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