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혼, 그 따스한 아름다움

요즘 우리 사회에는 명예퇴직이나 구조조정 등으로 일터에서 나온 많은 전문인력들이 일하고 싶어도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놀고 있다. 자녀를 다 키웠거나 여유가 있는 분들은 동네 사랑방이나 취미 생활을 즐기고, 조금 더 여유있는 분들은 해외여행이나 골프를 즐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직금을 조금씩 축내면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어떤 분은 상당히 괜찮은 직업을 갖고 많은 활동을 하신 분인데, 노년에 부인은 돌아가시고, 외아들은 미국으로 이민간 상태에서 얼마 남지 않은 전세금을 빼서 병원에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였는데, 그나마 그 병원에서 노인클리닉실을 폐쇄하는 바람에 오갈곳이 없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남의 일 같지 않게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통계청의 추계에 따르면 어느덧 우리나라도 노인부양률이 10%에 달한다고 한다. 노인 부양비율이란 15~64세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말하는데, 이는 곧 우리가 부양해야 할 노인층의 비율이 현재 10%에 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비율은 2030년에는 29.8%에 달할 전망이다. 즉 10명의 65세 미만 인구가 3명의 65세 이상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령화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물론 복지정책이다. 복지재정을 확립하여 노인들에게 국가에서 인간적으로 살 만큼의 연금을 주면 된다. 그러나 단지 노령 인구수에 따라 일정액의 복지재정을 확보한다는 식의 계획은 그 엄청난 부담액으로 해서 실현가능성도 거의 없고 설사 재정이 확보된다 해도 너무 낭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령인구 중에는 건강과 전문적인 능력, 그리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함께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국가가 적절히 일할 기회와 동기를 부여해 준다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아무런 물질적 대가나 보수 없이도 기꺼이 사회를 위한 봉사에 나설 것이다.

우리 주변을 한번 잘 살펴 보면 봉사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어르신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휴지를 줍고 다니시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또 나의 주변 어른들만 해도 교육상담이나, 교통지도나, 불우청소년 돕기 활동이나, 장애아 돕기와 같은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일전에 TV에서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하러 우리나라에 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맑고 활달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80세 가까운 그분의 소탈하고 활기찬 얼굴을 보면서 감동과 감사함을 느꼈다.

언젠가 그분은 토크쇼에 나와서 나이가 먹으니까 좋은 점은 쓸데없는 욕심이나 고집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좌절된 꿈과 질병과 능력상실, 궁극적으로 죽음까지도 모두 인간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나 또한 교장 임기가 중임을 한다고 하더라도 4년 정도 남았다. 그리고 정년 전까지 5년이 더 남았다. 요즈음은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많이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의 삶도 목표 없이 흐르는 대로 살아왔는데, 덤으로 사는 노후를 굳이 목표니, 꿈이니 그런 것에 매이고 싶지 않으니까.

그동안 외틀어지고 남루한 내 모습 들여다 보느라고 다른 사람 돌아 보지 못하였다. 이젠 나도 누군가를 위해 따스한 삶을 살고 싶다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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