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를 위해 서재를 정리하다가 누렇게 퇴색된 신문을 펼쳐보았습니다.
자, 그럼/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넌 남으로 천 리/난 동으로 사십 리/산을 넘는/저수지마을/삭지 않는 시간/삭은 산천을 돈다./등은 덴마크의 여인처럼/푸른 눈, 긴 다리/안개 속에 초초히/떨어져 서 있고/허허 들판/작별을 하면/말은 무용해진다./어느새 이곳/자, 그럼/넌 남으로 천 리/난 동으로 사십 리.
선생님의 ‘오산인터체인지’라는 작품이지요. ‘고향으로 가는 길’ 이라는 소제목까지 붙인 이 작품의 영향으로 저는 뒤늦게나마 글길로 들어섰습니다. 더구나 ‘시작노트’에서 ‘인간은 누구나 두 개의 고향을 갖는다. 하나는 지리적인 고향이요. 하나는 영혼적인 고향이다. 이 두 개의 고향을 항해하며 보다 먼 본질적인 고향은 영혼의 고향이라는 걸 나는 생각한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이 제 마음을 끌어당겼지요. 그때부터 저도 시를 쓰고 난 후에는 꼭 ‘후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선생님의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에서부터 ‘남은 세월의 이삭’까지는 무려 50권이 넘습니다. 표제시만 가지고도 한 권의 시집이 넉넉히 될 분량이지요. 저는 언젠가 생활이 넉넉해진다면 그 표제 작품으로 시집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께는 언제나 제가 아쉬울 때만 전화를 드렸는데, 이젠 통화마저 어려운 형편이니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작년 가을, ‘경기도문인 시낭송회’를 그곳 난실리 편운재 문학관에서 열지 않았습니까. 지난 2월 26일에도 ‘편운재’에 들렀습니다. 오산에서 302번 지방 도로를 탔더니 오산·화성·평택·용인시의 4개 시 경계를 지나더군요. 송전 삼거리 다리 위에서 잠시 멈추어 드넓은 호수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노인이/호심 깊이 낚시를 던지고/온종일 물가에 홀로 앉아 있다//물 속의 구름인지 바람인지/이따금 낚시찌만 흔들릴 뿐/호심 깊이 흰 구름 소리 없이 흐르고/천지사방이 귀를 찌르는 적막이다//우주 무한/오늘도 그 자리
선생님께서 지난해 펴내신 시집 ‘남은 세월의 이삭’에 실린 ‘무거운 세월’입니다. 고독한 노인의 심정을 이토록 투명하고 절절하게 표현하신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호수를 향해 홀로 낭송했습니다.
마을 입구의 놀이터에 ‘우리 난실리’라는 기교와 가식이 없는 선생님의 소박한 시가 새겨진 시비도 있더군요. ‘노인회관’앞에는 ‘조병화 박사 송덕비’도 세워져 있더군요. 난실리 사람들은 선생님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편운재 문학관’은 잘 정돈된 잔디와 조각 작품들이 우거진 숲과 조화를 이루고 선생님의 삶과 문단 이력까지 고스란히 보관된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있는 그대로 경기도기념물 혹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안성시에서 어련히 향토사적으로 정비하고 복원하리라 믿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관광 및 교육자원으로도 손색이 없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최근 펴내신 ‘편운재에서 보낸 편지’에는 ‘이젠 더 계속할 힘이 없어서 제120신으로 이번 편운재에서의 편지를 마감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선생님께서 읽어주시지 않더라도 자주 편지를 띄워 보내드리렵니다.
스스로/스스로의 생명을 키워/ 그 생명을 다하기 위하여/ 빛 있는 곳으로 가지를 늘려/ 잎을 펴고/빛을 모아 꽃을 피우듯이// 추운 이 겨울날/나는 나의 빛을 찾아 모아/ 스스로의 생명을 덥히고/ 그 생명을 늘려/환한 내 그 내일을 열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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