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내 이웃의 ‘來日’을 위하여

내 이웃의 ‘來日’을 위하여

/ 박상용(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장)

연말이 지나고 새해도 벌써 몇 걸음 내친 터다. 그러나 이웃돕기 성금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는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아직도 연말이다. 12월 1일부터 시작된 ‘희망 2003 이웃돕기 집중모금 캠페인’이 1월말에 끝나기 때문이다.

이맘때면 세상 사람의 마음은 하나다. 남녀노소,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명을 차오르는 새해를 향한 마음은 하나다. 불신과 나태와 미련 따위를 훌훌 털어버리고 벅찬 내일의 청사진에 지레 들뜨고 웬지 모를 기대감에 충만해한다. 모두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의 꿈이며 소망이다.

그러나 ‘내일’은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너 나 없이 내일을 얘기할 때 변함없이 오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엔 있다. 발버둥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사람들이다.

갑작스런 부모의 죽음에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소년소녀가장,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제 살길에도 급급해 버려진 노인, 피붙이를 낳자말자 입양시설에 떠맡기고 생활전선에 나설 수 밖에 없는 미혼모, 사고를 당하고도 아무런 보상없이 직장에서 쫓겨나 가족에게까지 버림받고 거리를 배회하는 가장, 난치병에 걸린 아이를 제대로 손한번 써보지 못하고 눈물로 포기해야하는 어머니…. 더러는 고아원이나 양로원, 노숙자쉼터, 장애인재활센터 등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되기도 하고, 더러는 얼마의 구호품과 이웃의 손길에 연명해가기도 한다. 오늘을 버티기에도 힘든 이들에게 내일을 얘기한다는 것은 사치를 넘어 고문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들 불행의 공통분모는 돈이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지만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부모포기 각서까지 써야 하며, 간혹 내일에 대한 욕망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 삶을 접는 극단적인 현상도 모두 돈 때문이다. 신년벽두부터 뜬금없는 프랑스 와인바람이 불어 한 병에 수만원 수십만원하는 와인으로 새해를 맞이한다지만 이들에게 그만한 금액은 생사를 가름하는 생명수다.

10만원이면 소년소녀가장이 한달 부식비 걱정을 덜 수 있으며, 50만원이면 절망의 어린이에게 개안수술로 미지의 세상을 열어줄 수 있고, 100만원이면 파란입술로 숨막혀하던 어린이에게 얼음판을 마음껏 지칠 수 있는 힘찬 맥박을 선사할 수 있다.

예년에 비해 연말이웃돕기 분위기가 가라앉은 느낌이다. 방송이나 신문지면에도 모금행사나 기탁사례 등의 얘기가 뜸하다. 동사무소 앞이나 골목입구에 나붙던 현수막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실제 성금모금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손학규 지사를 비롯해 도청 및 시·군 공무원은 물론, 관내 학교·기관·단체 등의 관심과 협조에 힘입어 공동모금회로 전달되는 성금은 전년보다 상승 추세다. 더 긍정적인 것은 기업체의 큰돈보다는 작지만 불특정 다수인 도민들의 손길이 크게 늘어난 점이다.

불행의 근원이 경제적 궁핍이듯, 그 해결의 실마리도 경제적 도움에서 찾는 게 순리다. 그렇다고 엄청난 도움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보다 상대적 혜택을 누릴 때 그 미안함의 일부만 내 이웃을 위해 나누면 된다. 적어도 1년에 한번 정도는 내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공동체 사회를 사는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자격이기도 하다.

이제 공동모금회도 뒤늦은 한해를 접어야 할 시간이다. ‘희망 2003 이웃돕기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끝나 소외된 우리 이웃들도 희망찬 내일의 문을 함께 노크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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