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

/김광남(안양지역시민연대 지방자치위원장)

무릇 배움이란 끝이 없다. 그래서 인생을 배움의 연속이라 한다.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 반드시 학문이 뛰어 나고 인격이 고매하거나 높은 덕망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승이라고 해서 배우는 사람보다 반드시 나이가 많을 필요도 없다.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란 말처럼 배움의 대상은 세상 도처에 널려 있다. 12월 19일의 대통령선거, 더 정확하게는 대통령 후보 결정과정과 대통령 선거후까지 우리 정치와 사회 일각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현상들도 우리에겐 배움 그 자체이다.

우선 선거과정부터 보자. 피켓과 어깨띠로 무장하고 무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선거운동원에게선 오히려 연민의 정을 느낀다. 선거 때만 되면 걸려오는 홍보전화는 찍어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짜증만 유발한다. 디지털 사회, 미디어형 국민들 앞에서 펼쳐지는 이런 낡은 아날로그 선거방식은 정치가 국민을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 이상 흑색선전과 같은 네거티브(negative)전략도 통하지 않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돈과 조직으로 동원된 허깨비 당원들보다는 네티즌과 자발적 지지그룹의 힘이 한없이 크고 위대함을 증명했다. 그 만큼 우리 사회와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건강해졌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된 사람’과 ‘몹쓸 사람’을 식별해 낼 수 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물에 빠진 사람 발목을 잡듯이 사사건건 발을 걸고 재를 뿌리던 몇몇 정치인들의 모습을 통해 역시 그들은 ‘감’이 아니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두 후보와 같이 몸담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딴죽 걸거나, 싫다고 나갈 땐 언제라고 막판에 다시 합류한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이것이 기회주의다’라는 표본을 보여주었다. 사필귀정이라고 역시 그런 사람들이 잘 될 턱이 없었다. 세상이 어찌나 이리 정직한지 난 이 세상이 너무 맘에 든다.

이번 선거는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맨스’란 말처럼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원칙은 남에게는 엄격히 적용하되 자신은 예외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이 보여준 일관된 정치적 소신과 원칙은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한 ‘원칙중심의 리더십(principle centered leadership)’을 보여주었다. ‘노깡-노변-노짱’의 과정을 통해 일관되게 고집해온 그의 원칙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던 표리부동한 일부 386정치인, 거물 정치인, 스타정치인들이 가진 이중적 소신이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악(惡)과 독(毒)’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노통’시대에도 그 원칙과 소신이 굳게 지켜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번의 패배 끝에 홀연히 정치를 떠나는 이회창의 모습도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낡은 정치인들에게 깨끗한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은 퇴장이다.

한 시대의 큰 사건을 통해 얻는 이들도 있고 무감각하게 지나가는 무리들도 있다. 후보였던 두 분을 통해 그들의 장점만을 우리가 배우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주변에서 추악하고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이 우리에겐 더 훌륭한 스승이다. 사람이 잘못을 통해 반성하지 못하면 짐승이나 다름없다. 정치도 깨닫고 변하지 못하면 세월이 가더라도 국민이 여전히 외면하는 ‘개판’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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