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선물

선 물(膳 물)

올해의 달력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성탄절은 물론 연말연시를 전후하여 사람들은 많은 선물을 준비 할 것이고 또 받을 것이다.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선택의 고민과 전해주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받는 이에겐 설레임과 기쁨이 있게 마련이다. 모든 이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전해주는 선물은 과연 어떤 것이 진실 되고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 한 편이 있다.

가난한 젊은 부부가 성탄절을 맞아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부부는 고민을 하다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는 조상들로부터 전해오던 회중시계가 있었는데 줄이 없어 차고 다닐 수 없었고, 아내는 길고 아름다운 머리가 있었지만 가꿀 수 있는 빗이 없었다. 형편이 어려워 살수 없을 것 같아 각자가 지닌 물건, 즉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 빗을 사고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계 줄을 사게 되었다. 비록 서로에게 전해 준 선물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지만 부부가 서로 사랑과 진실한 마음으로 준비한 선물이니 얼마나 값지고 참된 선물이었을까?

지금도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과연 나는 오랜 세월을 살면서 얼만큼의 진실과 정성이 담긴 선물을 주었으며 받았을까 자문해 본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고교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버스를 타고 통학하면서 어느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해 드린 일이 있었다. 할머니는 자리에 앉으셔서 보자기 속을 한참을 더듬다가 찐 고구마를 건네 주셨다. 당연히 노인 분께 자리를 양보해야함에도 감사의 표시를 하시려 건네주시던 찐 고구마, 난처하긴 했지만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의 손길과 얼굴 표정은 잊지 못할 선물로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선물 하나! 십칠년이 지난 지금도 상자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내의 한 벌이 있다. 모 지역의 책임자로 근무할 때 결핵환자 수용소인 ‘상록원’을 격려 차 두어 번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곳은 산간 벽지에 있었고 수녀님들이 봉사하며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 수녀님으로부터 속내의 한 벌을 선물 받았다. 내의를 몇 십 벌을 사다 주어도 시원치 않을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희생하며 봉사하는 수녀님으로부터 선물을 받게 되다니…. 수녀님의 참된 마음을 거절할 수 없어 받기는 했지만 너무도 귀하고 값진 선물이었다.

그 상록 요양원이 아직 있는지, 수녀님은 아직도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면서 아름답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진실과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은 기억도 나지만 내가 전해 준 선물 중에 가슴이 아렸던 일도 있었다. 고교시절 어느 모임에서 성탄절을 맞아 어느 기준을 정해 놓고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다. 선물을 섞어 놓고 제비뽑기를 해서 고르기로 했는데, 준비할 여력이 없어 달랑 노트 두 권만 포장해 선물들 사이에 섞어 놓게 되었다. 나에겐 좋은 선물이 걸렸지만 내가 준 선물이 선택된 사람의 실망스러웠을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 사람이 누군가 알면 다른 선물을 전해 주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 속에 후회로 남아 있다.

이제 곧 성탄과 연말연시를 맞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전해야 할까? 작든지 크든지 방 하나 가득 채울 선물을 찾아야 한다면 해답은 양초라는 말이 있다. 방에 초를 켜 놓으면 방안 구석구석까지도 밝게 비출 수 있으니 방안 가득 채울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의 몸을 태워 환하게 밝혀 주는 초야 말로 커다란 선물이 아닐까? 참된 선물은 가격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닌 준비하는 사람의 참된 마음과 정성이 얼마만큼 담겨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 명의 천사를 이 세상에 보내어 아름다운 것을 골라 오라고 하셨다. 한 천사는 아름다운 꽃을, 다른 천사는 어린 아이의 웃음을, 마지막 천사는 사랑을 가지고 천국으로 갔다. 어린 아이의 웃음은 그동안 늙었고, 아름다운 꽃은 시들어 버려 소용없어 졌지만 사랑은 영원토록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었다 한다. 마지막 천사가 가지고 간 사랑처럼 가슴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사랑이 듬뿍 담긴 선물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겠다. 정년이라는 언덕을 넘어 쉼터에 앉아 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모습을 아름답게 가꾸고픈 열정이 젊은이 못지 않기에,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나와 주고받았던 선물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일까 찾고 있다.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주고받으면서도 서로에게 마음에 부담을 주는 선물을 배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참되고 정성스런 마음이 담긴 사랑의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2년 12월

전 남양주 시장 황 종 태. 황종태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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