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쁜 중독, 좋은 중독

/구본상(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팀장)

얼마전 개봉된 영화중‘중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형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하게 되어 형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형의 영혼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 것처럼 속여서 형수와 살게 되는 말 그대로 한 남자가 사랑에 중독된다는 내용이다.

무엇인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빗나간 사랑, 마약, 알코올, 도박같이 한번 중독에 걸리면 그 파장은 자신의 의지는 물론, 가족과 이웃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번져간다. 이런 중독은 사회 악이다.

몇 달 전의 일이다. 학교 선배님의 점심 초대로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현관을 막 들어서는데 아이들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중3, 중1된 두 딸이 전화요금과 관련하여 훈계를 듣고 있던 중이었다. 내용인 바 700서비스를 너무 많이 이용하여 평소 5만∼6만원이던 전화료가 갑자기 20만원이 넘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700서비스로 핸드폰 벨소리를 최신곡으로 자주자주 바꾸는 것은 물론 대화방 같은 곳에 전화를 해서 잡담을 하는 등으로 전화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700번으로 시작되는 전화서비스가 많다. 날씨나 교통정보제공에서부터 대학합격유무 확인까지 그 용도는 다양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흥미위주인 것이 문제다. 핸드폰 벨소리를 최신곡으로 바꾸기, 좋아하는 연예인의 목소리 듣기, 선물타기 퀴즈나 게임 등등. ‘엔조이방’ ‘엿듣기방’ ‘포르노보기’ 등 이름부터 수상쩍은 전화서비스까지 청소년들을 무방비로 유혹하고 있다.

사실 나도 700서비스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700서비스로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팀장이다. 060-700-1212. 지난해까지는 700-1212였으나 정보이용 사이트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올해부터는 060-700-1212로 바뀌었다. 이 번호로 한 통화를 할 경우 2천원의 성금이 적립되어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돌아간다. 매년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는 ARS모금액에 애태우는 나에게 다른 700서비스는 중독이라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안타깝게도 그 흔한 700중독 중에 ‘성금모금700중독’에 걸린 사람은 의외로 적은 것 같다. 지난해의 경우 도내서 060-700-1212를 누른 횟수는 9만 건 정도다. 980만 경기도민은 물론, 220만 가구에도 턱없이 모자란 숫자이다.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누른 것을 감안하면 실제 모금ARS에 참여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다른 700서비스는 이용하는 대로 비용이 들고 하루에 몇 번이고 걸 때마다 요금이 올라간다. 하지만 060-700-1212는 다르다. 하루에 아무리 여러 차례 눌러도 한번밖에는 되지 않는다. 10번이고 100번이고 걸어도 2천원만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060-700-1212의 중독자는 생기지 않는 걸까? 방법을 몰라서일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정많은 민족이다. 이들이 성금의 귀중한 의미를 안다면, 그 성금이 우리 이웃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희망으로 돌아가는지 그 가치를 안다면 중독되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ARS 한 통화는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시설등에 전달되어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되살리는 귀하디 귀한 불씨가 된다.

올겨울은 따뜻하다지만 그래도 바람은 차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겨울은 더욱 고통스러운 법이다. 이들을 위해 일년 내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희망2003 이웃돕기캠페인’ 기간(12. 1∼1. 31)만이라도 매일매일 060-700-1212에 중독되면 어떨까?

올겨울에는 모든 사람이 060-700-1212를 누르는 ‘좋은 중독’에 걸리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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