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혼자 노는 법

/이지현(한길봉사회 경기도지부장)

나는 어려서나 학교 다닐 적에 적지않은 친구들을 사귀긴 했지만 교우관계가 자유롭진 못했다. 돌아가신 친정 아버님이 워낙 엄하셨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내 친구를 보시고 언행에 좀 흠이 있다고 판단되면 깊이 사귀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될지 몰라도 내가 성장할 때만 해도 그런 집안이 적잖았다.

결혼해서도 예외가 되진 못했다. 남편 역시 이웃간 주부일 지라도 자기가 봐서 뭣하면 왕래를 못하도록 나를 제지하곤 하였다. 구닥다리 같지만 그러니까 여자는 어려선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른다는 삼종지도 가운데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이종’은 한 셈이 된다.

이리하여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혼자 노는 법을 절로 터득하게 됐다. 이젠 취미생활로 익혀진 음악감상, 화초가꾸기, 살림 옮기기 등이 다 이런 혼자 노는 법에서 시작된 것이다. 혼자 노는 법은 이밖에도 많지만 예를 든 음악감상도 그냥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 저기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골라 녹음으로 이리도 편집해보고 저리도 편집해보면 해볼 수록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화초가꾸기도 그렇다. 화초도 대화의 반응을 보인다고 하면 웃긴다 할지 모르지만 사람의 손이 간만큼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다. 잔 손질 할 때마다 아이와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말을 하다보면 생물이기 때문에 각별한 정을 느낄 수가 있다. 살림 옮기기는 무거워 혼자 들기 힘겨운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가벼운 살림의 배열구도를 바꾸거나 진열을 다시 정리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노는 법에 오랫동안 익숙하다 보니 말 수가 적어져 남에게 ‘거만하다’는 본의 아닌 오해를 받기가 일쑤였다. 하긴 타고난 성격의 자존심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군말을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 뿐인데도 오해를 받곤 하였다. 혼자 노는 법에서 탈출이 시작된 것은 아이들 학교관계로 어머니회장 일을 보면서부터 였으나 그래도 완전탈출은 불가능했다. 완전탈출은 한길봉사회를 맡고나서였다. 특히 급식봉사를 하면서는 많은 분들을 만나야 했고 많은 얘기를 나눠야 했다. 사람의 성격이란 이래서 달라지는가 할 만큼 지금의 내 성격은 전과 다르다. 누군가가 ‘환경은 제2의 천성을 만든다’고 했다.

이제 공자가 말씀하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 아직도 우둔하여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진 못하지만 어떻든 지금까지 살면서 맺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매우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지난 10년, 20년이 엊그제 같으면 오는 10년, 20년 또한 어느 새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존의 절대 권력자나 아무리 돈 많은 재벌의 부호일지라도 오만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 세월이다.

두 아들이 어느덧 장성하여 사회활동을 하는 터에 내가 나이 먹은 것을 억울하게 여기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가 하는 생각에서 혼자 실소를 터뜨릴 때가 있다. 남편이나 나나 장차 노인이 되어도 따로 살지 자식들에게 의지해 살고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마음뿐일지 모른다. 백발노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지만 세월 앞엔 장사가 없으니 그 입장이 안된다고 큰 소리 칠순 없는 일이다. 그때 가면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의지하는 마지막 삼종지도가 되고, 그때 가면 아무래도 혼자 노는 법을 또 재수해야 않겠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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