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 사회는 외래문화에 대한 척화지대(斥和地帶)인가.
청년시절에는 학생운동으로, 그 이후에는 조국을 버리고 망명, 30여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택시기사로 샹젤리제 거리 곳곳을 누비던 한 지식인의 발언이 화제다.
그는 지난 5일 오전 인천시내 모 호텔에서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주최한 아침대화에서 “파리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생활하면서 ‘아 이 나라의 힘은 똘레랑스(Tolerance:관용)에 있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똘레랑스’란 외국어가 풍기는 뉘앙스가 단순하게 ‘관용(寬容)’이라고 번역되는데 이견을 달았다. 관용이란 ‘실수나 잘못 등을 봐준다’는 전제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의 똘레랑스는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한다’는 전제로부터 시작되는 개념입니다”
그는 이 날 1시간이란 지극히 제한된 시간을 통해 똘레랑스라는 어휘를 토대로 서양의 근대사와 우리의 근대사를 간단명료하게 꿰뚫어 줬다. 그의 분석대로 우리 사회 곳곳에는 외국에서 상륙한 문화나 종교, 관습 등을 ‘우리의 것’으로 포용하지 못한 채 영원히 이질성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외국인들은 “한국처럼 외국문화가 이처럼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청·장년기를 보낸 한 지식인의 분석은 숲은 보고 나무는 제대로 보지 못한 어정쩡한 시각에서 나온 오진일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렇다.
“그동안 근대화의 열풍에 휩싸여 수용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고, ‘근대화=자본주의화’라는 합리적이지 못한 조류가 이 시대를 풍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연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국가안전보장에는 여러분의 신고정신이 필요합니다’라고 적힌 표어를 보고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방인들을 맞이하는 준비가 미흡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가 강연 서두에 밝힌 에피소드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신고전화인 113번과 비슷한 번호가 프랑스에도 있는데 그 번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신고하는 전화입니다” /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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