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동구 금곡동 터줏대감인 김수복옹(92)은 한마디로 인천유도의 산 역사다.
그의 유도 입문은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전쟁을 발발한 일본의 서슬 퍼런 강압이 한반도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던 시절.
청년 김수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무술을 배웠다.
“왜 있잖소.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퇴(百戰不敗)란 교훈을. 그래서 최선을 다해 유도를 익혔지”
귀국후 김옹은 지금의 배다리 근처인 금곡동 23 일대 골목에 ‘대한상덕관’이란 도장을 차렸다.
현 동산중고의 전신인 인천상업전수학교 초대 교사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공인 유도 9단.
근 65년동안 숱한 유도인들을 배출했던 김옹의 도장이 최근 배다리 헌책방 골목 접골원 자리로 옮겼다. 접골원도 내력이 있다. 김옹이 ‘대한상덕관’과 함께 운영했던 시설. 그런 공간에 40평 남짓한 도장을 차렷다.
“아버님은 해방직후 공설운동장에서 전국 최초로 경인지역 야외유도시합도 열고 시민단체 체육대회도 개최하셨죠”김옹의 차남 김천기씨(49)의 기억이다.
김옹의 지도로 40여년간 도장을 지켜온 유도 5단 서재남씨(52)는 “선생님은 유도에 임하면 공격적이어서 ‘숲속의 사자’라고 불리었다”며 “굳히기가 특기인데 지금도 손목 힘이 굉장하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김옹과 악수를 나눈 이들은 아직까지 손목이 시리다고 너스레를 떤다.
/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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