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최초 여류시인 홍명희씨

검동뫼, 부엉바위, 귀야이고개, 개듬물, 달강재, 쇠뿔고개….지금은 도서관 한켠에 비치된 오래된 문헌에서만 찾을 수 있는 토속적인 지명들이다.

그러나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인천시 동구 금곡동 일대에선 이같은 이름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서너번만 불러보면 금방 입에 군침이 돌면서 할머니 품처럼 편해지는 탓(?)일까.

인천 토박이이자 시인인 홍명희여사(69·인천시 동구 송림동)는 이처럼 편하고 아늑한 땅이름들이 산업화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누구보다도 안타깝다.

“동구청 자리는 일제시대 도축장이었고 그곳을 지나 배다리로 나오는 길목은 당시로는 제법 잘 닦인 신작로였지요. 금곡동(金谷洞)이란 명칭도 조선시대 이 골짜기에서 쇠가 났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지요”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도 바로 이 길목에서 문을 열었다고 기억했다.

한국전쟁 직후 대한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등단한 인천 최초의 여류시인이기도 한 그의 작품속엔 그래서 질박하고도 구수한 고향 풍경들이 수채화처럼 잔잔하게 묘사되고 있다.

“가끔 답답한 생각이 들 때면 이 거리로 나옵니다. 그러면 어느새 가슴이 환해지고 어디선가 묵직한 뱃고동소리도 들려 오곤 했어요. 금곡동은 제가 가장 아끼는 노리개보다 더 소중한 거리지요”

그가 어렸을 적만 해도 밀물때면 배다리로 바닷물이 들어왔고 금곡동 어귀에서도 비릿한 생선냄새가 풍겨 왔었다.

첫번째 시집인 ‘범부(凡婦)의 서(書)’이후 ‘사랑으로 가는 길’, ‘네가 어디에 있느냐’, ‘햇빛과 비바람 천둥번개’등 모두 4권의 시집을 낸 그는 이번 봄에 금곡동의 서정을 담뿍 담은 작품들을 모아 선 보일 계획이다./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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