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 前 관세청장
중국 내몽골 ‘엘렌하오터’를 출발해 남쪽으로 460㎞ 떨어진 산시성 ‘다퉁(大同)’으로 향한다. 시베리아와 몽골고원 통과까지 약 5천500㎞를 달려왔다.
오늘부터 중국 영토의 실크로드 시안, 난저우, 둔황, 투루판, 쿠차, 타클라마칸사막, 카슈가르, 파미르고원을 지나갈 것이다.
오늘 중국 내몽골 자치성 고비사막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7월 고비사막의 한낮 기온은 매우 높다. 광대한 사막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우리나라 봄철 황사(黃砂) 발원지를 지나고 있다.
놀라운 것은 460㎞에 이르는 고비사막의 고속도로 양옆으로 무성한 ‘가로수 숲’이 조성돼 있다. 한 그루씩 심은 가로수가 아니라 넓은 폭으로 ‘가로수 숲’을 조성해 놨다. 소나무, 포플러나무, 백양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도로 옆에 넓게 숲처럼 조성돼 있다. 멀리서 물을 끌어와 매일 물을 줘야 나무가 자라는데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
사방 지평선이 펼쳐져 있는 넓은 사막의 텅 빈 하늘에 새 한 마리 안 보인다. 몽골고원, 고비사막의 원시적 자연의 기(氣)를 흠뻑 받으며 달린다. 황량한 사막의 단순함과 광대함은 세속의 마음을 비우게 만들고 우리 마음도 자연의 일부로 순화되는 것 같다. 몇 시간씩 텅 빈 광야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내몽골 고비사막을 400㎞ 이상 지나 산시성 다퉁 가까이 왔다.
■ 뉴욕타임스 선정 세계 10대 위험한 건물, ‘현공사’
숙소로 가기 전 다퉁시 외곽에 있는 타이항산맥 헝산의 ‘현공사’로 향한다. 오늘은 토요일 오후다. 현공사 입구부터 중국인 관람객이 인산인해다. 뉴욕타임스가 2010년 ‘세계에서 가장 기이하고 위험한 건물 10선’을 선정했다. 헝산 현공사는 피사의 사탑, 그리스 메테오라 수도원 등과 함께 선정돼 유명해졌다.
1400년 전 선비족이 북위 시절에 세운 오래된 사찰이다. 토요일이라 중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 절 목조건물까지 못 올라가고 계곡 건너편에서 바라만 봤다. 당시 이곳 다퉁은 흉노족 이후 몽골고원의 강자인 선비족이 세운 북위의 수도였다. 중국이 오랑캐라고 부르던 선비족이 세운 북위는 불교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현공사는 유불선(儒佛仙) 세 종교의 성인인 공자, 부처, 노자 세 분을 모시고 있다. 세 사람 성인을 한곳에 모시고 기원하면 복을 세 배 받을 것이라는 유목민의 단순한 생각이 엿보인다. 절을 지탱하고 있는 현공사 나무 기둥은 30m의 가느다란 나무를 오랫동안 기름에 절여 만들었다. 기둥이 낡으면 수시로 교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위 절벽 하단의 빨간색 ‘장관(壯觀)’ 글자는 당나라의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태백(李太白)이 이곳에 와서 쓴 글씨라고 한다. 이태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을 음미해 본다.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타이항산은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전설이 깃든 산이다. 아주 먼 옛날 태행산과 왕옥산 산속에 사는 90세 노인이 높은 산을 넘어 다니는 것이 불편해 산을 평평하게 깎아 길을 내기로 결심했다.
모든 사람이 노인을 우공(愚公), 즉 어리석은 사람이라 불렀다. 노인은 동네 사람의 비웃음에 굴하지 않고 내가 못 하면 아들, 손자, 손자의 손자 등 계속하면 언젠가 길을 낼 수 있다고 말하며 산을 깎기 시작했다. 태행산 산신령이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해 산을 옮겨 주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라 한다.
■ 비단이 ‘로마’로 가게 된 역사적 사연
로마의 명장 ‘카이사르(율리우스 시저)’의 비단 사랑은 대단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당시 최고급 사치품인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위신을 과시했다. 당시 로마의 귀족 여인 사이에 비단옷이 대유행이었다.
속이 비치는 비단옷을 많이 입어 보수적인 원로원 의원은 풍기문란을 걱정하며 여성의 비단옷 착용을 금지했으나 소용 없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비단이 어디서 오는지, 누에가 뽕잎을 먹고 만드는지를 몰랐다.
어떻게 비단이 험난한 대륙을 지나 로마제국 수도로 팔려 갈 수 있었을까.
역사적 사건은 한나라 건국자 유방의 평성의 치욕을 뜻하는 ‘평성지치(平城之恥)’다. 한 고조 유방은 항우를 토벌하고 한나라를 건국한 영웅이다. 기원전 200년 한 고조 유방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족을 정벌하러 ‘평성’(현재의 다퉁)에 왔다.
당시 흉노족 선우(왕) ‘묵특’은 4만 군사로 맞선다.묵특의 유인계에 빠진 유방은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다. 유방은 묵특선우의 부인에게 뇌물을 바치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해 목숨을 부지했다. 패배한 유방은 흉노족과 형제지간(한나라가 형, 흉노가 아우) 화친을 맺는다.
유방은 공주를 흉노왕에게 시집(‘화번공주’의 시초)보내고 매년 엄청난 양의 비단, 은화, 곡식 등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한다. 흉노족이 받은 비단은 초원의 길을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 로마제국까지 간 것이다. 한나라에서 흉노족에 시집간 화번공주 중 중국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이 있다. ‘왕소군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아름다움에 취해 날갯짓을 멈추고 땅에 떨어졌다’는 비유가 유명하다.
화공이 뇌물을 안 준 왕소군 초상을 추하게 그려 흉노왕에게 시집가도록 선발된 것인데 떠나는 날 임금이 절세미인임을 알고 초상화를 잘못 그린 화공을 처벌한 일화로 유명하다. 2천여년 전 흉노족의 비단 역사를 생각하며 다퉁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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