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너무 빨라 손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용했던 물건조차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 세대 전에 흔했던 물건도 이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수십년 전 한국인의 밤을 밝혀 주던 등잔도 마찬가지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의 한 구절이다. 포은정몽주선생묘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인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밤을 밝히는 등잔을 주제로 1997년 개관한 한국등잔박물관(관장 김상규)이 있다. 3대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등잔박물관의 설립정신은 무엇일까.
■ 보배 같은 빛을 뿌려 밤을 열어 주던 등잔
“작으나마 반짝이는 불빛, 천한 사람 귀한 사람 차별 않고 보배 같은 빛을 뿌려 밤을 열어 주던 등잔, 방황하던 옛님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했던 등불. 이 모두가 이제는 기억에서마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두 분(김동휘, 장영숙)은 이들을 거둬 안주할 곳을 마련하고 영원히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이곳에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수원화성을 닮은 박물관에 들어서면 ‘사진으로 보는 박물관 역사’란 작은 공간이 있다. 박물관의 역사를 보여 주는 사진이다. 1997년 9월28일 한국등잔박물관 개관식 날의 풍경, 1969년 고등기 전시관 개관일의 풍경, 양복을 입은 신사가 등잔을 죽 늘어놓고 남녀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는 사진에 1971년 동양방송(TBC) 굿모닝쇼에 출연한 고 김동휘 초대 관장이 1시간 동안 유물을 설명하는 장면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옛님의 불빛이 돌아왔네’라는 글귀가 적힌 박물관의 설계도면도 전시돼 있다. 어른 세 사람과 작은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설명을 보니 아이의 어깨를 잡은 중앙의 어른이 김동휘 초대 관장, 오른편은 부친, 왼편은 2대 김형구 관장, 소년은 3대 김상규 현 관장이다. 4대가 나란히 찍은 희귀한 사진 앞으로 ‘종지형 등잔’과 심지가 하늘로 향한 ‘호형 등잔’이 놓여 있다.
벽에 걸린 두 개의 표창장은 또 무엇일까. 2004년 문화재청은 제1회 ‘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의 보존관리 부문의 수상자로 한국등잔박물관 김동휘 관장을 선정한다. 초대 관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받은 표창장과 2대 김형구 관장이 2013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받은 표창장이다. 2대에 걸쳐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박물관이 대한민국에서 또 있을까.
박물관은 8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 절반이 등잔이다. 전시관의 구조가 아주 재미있다. 입구에 1층 전시실로 내려가는 계단과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안내판을 보니 1층에 농기구 전시관이 붙어 있고 너른 정원에는 고누놀이나 투호 같은 민속놀이를 할 수 있는 야외 전시장이 있다.
■ 한국 최초의 등잔박물관이 탄생한 내력
‘등잔박사’로 불렸던 설립자 김동휘(1918~2011)는 화성이 둘러싸고 있는 수원시 신풍리에서 태어나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경기도수원병원에서 근무한다. 6·25전쟁 일어나 인민군에게 강제 징집돼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다시 국군에 소속돼 군의관으로 환자들을 돌본다. 휴전이 되자 수원에서 보구산부인과를 개원한 그는 밀려 드는 환자를 돌보는 바쁜 몸이지만 틈날 때마다 인사동과 황학동을 돌고 고물상을 뒤져 등잔을 비롯한 유물을 찾아낸다.
처음부터 등잔에 끌렸던 그는 1971년 수원에서 등잔 전시회를 열고 동양방송 아침 생방송에 초청돼 등잔의 매력을 세상에 알린다. 1969년 병원 2층에 등잔 전시실을 마련했던 그는 결국 병원 건물을 판 돈 전부를 들여 1997년 용인에 한국등잔박물관을 세운다. 수원문화원 창립의 주역이며 예총 경기지부장을 맡기도 한 그는 국전에서 4년 연속 수상한 원로 사진작가이자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1980년대 말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화성 복원 운동을 적극 펼쳤으며 등잔박물관을 지을 때 외관을 화성 동북공심돈을 본떴을 정도로 수원화성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2009년 여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연 사진전 ‘화성을 걷다, 화성을 보다’는 이를 알려 주는 전시였다.
■ 등불이 밝혀 주는 옛날의 아늑한 풍경
김상규 관장의 안내로 박물관을 관람한다. 계단을 내려가 1전시실로 들어서니 오른편에 정갈한 부엌이 나타난다. 장작 아궁이 위에 걸린 무쇠솥, 그 옆에 호롱불 하나가 놓여 있고 벽에도 등잔이 걸려 있다. 함지박과 놋그릇이 진열돼 있는 찬장, 약탕기, 떡메, 절구가 놓여 있고 벽에는 창문이 나 있다. 부엌에서 지은 밥상이 차려지는 안방 풍경이 이어진다. 멋진 도자기가 진열장에 놓여 있는 안방 한가운데도 등잔이 놓여 있다.
“등잔의 높이를 잘 보세요. 우리 조상들에게 등잔의 높이가 중요했지요. 식사와 독서도 앉아서 했기 때문에 불빛이 가장 밝게 비추는 높이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렇다. 등잔은 선조들의 생활의 지혜가 묻어 나는 유물이다. 투박하지만 튼튼하게 만든 등잔대에 얌전하게 올려진 등잔에서 옛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하다.
꽃과 새를 그린 병풍을 배경으로 우아한 촛대가 두 개 서 있다. 초 높이에 바람을 가리고 불빛을 모아 주는 역할을 하는 나비 모양의 장식이 멋스럽다.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어요. 촛불을 켜면 벽과 창문에 그림자가 비치게 되는데 아주 운치가 있다고요.” 일렁이는 불빛에 나비 그림자가 춤추는 방안 풍경을 상상하며 옥으로 장식한 비녀와 은장도, 노리개, 거울 같은 옛 물건을 감상한다. “어머니의 향긋한 분 냄새가 나는 안방입니다. …달빛조차 새어 들 데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어머니는 잠도 잊으신 채 불빛 앞에 바짝 다가 앉아 밀린 바느질거리와 함께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정성껏 마름질하십니다.” 설명문도 등잔 불빛처럼 환하고 따스하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인 안경과 문종이에 인쇄된 한문책을 보니 할아버지의 방안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두 개의 등잔대 위에 등잔이 놓여 있다.
■ 보고 생각하는 박물관
사립박물관은 학예사를 1~2명 두는데 한국등잔박물관에는 학예사가 4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사실 사립박물관의 상당수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등잔박물관이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회에 환원하려는 뜻을 담아 ‘재단법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상(至上)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이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정성을 다해 돌보겠습니다. 이미 내 것은 내 곁을 떠나 겨레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유물들은 여러분 각자가 아끼고 보살피고 사랑할 때 더욱 빛날 것입니다. 또 그것만이 이를 보존하고 발전시켜 후손 대대 물려줄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보고 느끼고 즐기십시오. 그리고 한결같이 사랑해 주십시오.” 김형구 2대 관장의 말이다.
한국등잔박물관은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전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등잔, 색다르게 바라보기’ 기획전도 그런 고민이 묻어 있다. 선조들의 삶과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는 등잔을 ‘빛’으로 정의하고 ‘과거의 빛’, ‘현재의 빛’, ‘미래의 빛’ 3개의 주제로 나눠 바라보게 한다. 예컨대 ‘과거의 빛’은 등잔이 어떤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사용됐는지 손과 코와 귀로 전시물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홈페이지에 소개하는 ‘관람안내’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 있다. 조용히 관람하고 싶다면 이해하기 쉬운 전시 안내서를 보며 즐겁게 관람하자고 권한다. 그럼, 설명을 듣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매표소에서 해설을 요청하고 전문해설가와 함께 전시를 꼼꼼하게 관람하라고 권한다. ‘활동 안내’도 아이들의 생각과 태도가 자라도록 유도한다. 첫째, 빛을 나의 일상과 연결해 보는 현장 참여형 워크숍에 참여해 내 생각을 포스트잇에 적고 벽에 붙여 보자. 둘째, 전시를 관람한 뒤 전시 연계 체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고 나만의 액자를 만들어 보자.
어른들에게는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 주고 아이들에게는 생각하는 힘을 쑥쑥 길러 주는 한국등잔박물관이 경기 용인에 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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