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언 기상청장
올여름, 지속된 폭염과 열대야로 가을이 더욱 기다려졌다. 하지만 9월에도 더위가 이어지고 기상청의 9월 최고기온 극값을 대부분 지역에서 경신하는 등 더위는 식을 줄 모르며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위험기상이 속출했고, 이웃 나라 중국에 태풍이 연속적으로 통과하면서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래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비록 기후위기 속에 많은 위험기상이 있었지만 맑고 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은 오기 마련이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하나의 낙엽을 보고 가을이 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이 성어처럼 자연을 관찰해 계절의 변화를 파악하는 기상청의 업무가 있다. 바로 계절관측으로, 기상청은 봄이면 벚꽃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고 가을엔 색을 바꿔 입는 은행나무나 단풍나무 등을 관찰해 계절의 기후 특성을 감시하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느낄 수 있듯 나무도 잎의 색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푸릇하게 피어나는 새잎은 희망찬 봄을 알리고, 무성한 초록빛 잎은 더운 여름날에 휴식처를 제공하며, 붉게 물든 단풍은 가을철 나들이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잎의 변화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초록색의 나뭇잎은 엽록체 속에 있는 엽록소로 구성돼 있는데 겨울이 다가오면서 나무가 휴지기에 들어서면 엽록체가 파괴되고 상대적으로 분해 속도가 느린 카로틴, 크산토필 같은 색소가 나타나 나뭇잎이 노랗게 보이고 카로티노이드,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에 의해 붉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단풍은 가을의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선명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낸다. 우리나라의 단풍은 평균적으로 9월 하순에 설악산을 시작으로 10월 하순이 되면 한라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남부지방에서도 볼 수 있다.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첫 단풍은 산 전체로 봐 정상에서부터 20%가량 물들었을 때이고 단풍 절정은 약 80% 물들었을 때를 말한다. 지난해 북한산 단풍은 10월17일 시작돼 10월27일 절정이 관측됐다.
기상청은 많은 이들이 찾는 유명 산 단풍의 시작과 절정을 관측해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가을 여행과 산행에 도움을 주고 있다. 단풍은 평균적으로 설악산은 9월 하순, 내장산은 10월 하순에 시작하며 보통 시작 후 2주 이내에 절정으로 물든다. 기상청은 9월 중순부터 전국 21개의 유명 산 단풍 현황을 날씨누리에 11월 중순까지 약 2개월간 제공한다.
한편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도 기상학적 계절의 지속시간이 변하고 있다. 최근 30년은 과거 30년보다 여름이 20일 길어졌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이대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된다면 미래에는 가을이 없어질 수도 있기에 우리 모두 일상에서 탄소저감 활동을 실천해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는 노력을 기울여 가을의 아름다움을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이다. 높고 맑은 하늘과 청명한 가을, 기상청의 단풍 정보를 활용해 여행과 산행의 즐거움을 높이고 안전하게 만추가경(晩秋佳景)을 만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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