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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8-④

박물관 내부 빛바랜 사진에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행진하는 모습

한국동란 이후 동서 간 이데올로기 투쟁이 심화하였고 공산주의 진영 내에서도 중국과 소련 간의 충돌로 편 가르기가 촉발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쿠바 경제는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침체하였고 그 과정에서 체 게바라는 경제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자아비판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권력 속성상 그의 실책을 반대파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 틈에 피델 카스트로의 친 소련파는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자 그는 권력 중심에서 멀어졌다. 그 후 피델은 친소정책을 표방하며 자국 내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허용하고 군사와 경제 원조를 얻어냈으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소련이 배치하였던 핵미사일을 철수하자 체 게바라는 소련의 진의에 깊은 회의에 빠졌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핵미사일 사건에서 미국이 이기자 그는 ‘소련은 더는 사회주의 혁명을 지원하는 종주국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며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과 개발 모델에 큰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 피델 카스트로는 정권을 유지하고자 소련 이념과 정책 방향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자 둘 사이에는 봉합할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 건물 벽면에 ‘계속 승리를 향해’라는 구호와 함께 체 게바라의 모습이 걸려 있다
건물 벽면에 ‘계속 승리를 향해’라는 구호와 함께 체 게바라의 모습이 걸려 있다

1965년 체 게바라가 알제리를 방문하여 소련을 향해 “어떤 사회주의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처럼 착취한다”라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격노한 소련의 집권자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체 게바라가 공직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쿠바에 대한 모든 경제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카스트로는 그를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노동계급이 중심이 되는 대중혁명을 지원하고자 쿠바에서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는 소수 지지자와 함께 사회주의 혁명 게릴라도 되돌아가기 위하여 쿠바를 떠나기 전에 가족과 카스트로에게 남긴 작별 편지가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쿠바인들에게 유명한 편지 내용은 두 사람이 각자 제 갈 길로 가면서도 서로에 대한 축복으로 어우러진 이별 이야기로 그들은 ‘혁명을 사랑으로 바꾼 애절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칭송한다. 산타클라라를 방문하면 누구나 이 편지를 보려고 이곳을 찾는다.

▲ 노점에 있는 체 게바라의 다양한 기념품들
노점에 있는 체 게바라의 다양한 기념품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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