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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6 (일)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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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 드리운 심산, 지리산

지루한 장마가 끝났다. 빗줄기를 견뎌낸 야생화들이 선명하게 생기를 찾았지만 노고단 길은 운무에 휩싸였다. 나는 좀 더 속도를 냈다. 산죽이 깔린 숲속으로 모성애 같은 바람이 엷게 불어 왔다. 나무 그늘 아래서 터무니없는 인생의 보상처럼 도시락을 먹었다. 차오르는 숨을 토해내며 반야봉에 오르자 무수한 잠자리들이 허공을 점령하고 있었다. 설마 가을이라 생각한 걸까? 삼도봉을 지나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한다. 기나긴 계곡은 거친 물소리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애인을 숨겨두고 싶은 곳이라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는, 이 깊은 산을 내려왔으니 적멸이거나 냉혈이거나 은어회에 쐐주 한잔 걸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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