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나도는 우스갯소리다. 누가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구조를 안해 어느 행인이 건지고 보니 노무현이더라는 것이다. 고맙게 여긴 그가 행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해서, 그럼 꼭 한가지가 있다며 말한 소원이 어디가서 내가 구해줬다는 소릴 (구해줬다고 하면 욕을 얻어먹을 테니까)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절대 지지층이 들으면 노발 대발할 소리지만 이것이 세간의 민심이다. 그러나 정작 가여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민초다.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김해 진영땅 봉하마을에 짓는 퇴임후에 살 사저가 가히 중세기의 장원(莊園) 규모다. 연건축면적이 1천277㎡(386평)에 이르는 노무현가(家) 말고도 노무현가 집터 4천290㎡(1천297평)를 포함한 3만900여㎡(1만600여평)의 매머드급 개인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장원’에서는 형되는 노건평씨 가족과 가신들 그리고 경호요원이 함께 살게되는 모양이다.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드골이 낙향하여 산 집은 낡은 생가다. 동네 아이들의 할아버지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말년을 소일했다. 죽어서도 생전의 유언에 따라 고향 사람들과 함께 동네 공동묘역에 묻혔다. 국민투표에서 패해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오늘날 드골을 ‘위대한 프랑스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던 위대한 지도자로 프랑스 국민들이 추앙하는 이유가 그같은 검소한 인품을 흠모하는 데 있다.
진영땅은 ‘노무현 장원’이 있어 앞으로 좀 시끄러울 것 같다. 진영(경찰)지구대가 벌써 구설수에 올라 있다. 도박사건을 조사하면서 편파적으로 한 것이 대통령 형되는 이의 친분인사가 개입된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이같은 혐의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도됐다.
대통령을 빗대는 항간의 우스갯소리로 불쌍한 것은 퇴임후의 호화 장원을 꾸미는 대통령이 아니고, 국민인 것은 잘못 뽑은 그같은 지도자의 지배로 민초들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속에 무력감에 빠진 민중은 그런 풍자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시류인 것이다.
신정아 게이트 등을 두고 ‘깜’도 안되는 소설을 (언론이) 쓴다던 그가 변양균(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이 드러나자 한다는 말이 “할 말이 없게 됐다”는 것이다. 미술계에서 국비 지원을 잘 따오기로 평판난 그녀가 예산처 차관·장관을 지낸 사람과 그토록 가까웠으니 이제와서 알고보면 국비가 쌈지돈이었던 셈이다.
측근 비리가 어디 그 뿐인가, 그간의 청와대 사람 등 비리를 말하자면 책을 한 권 써도 족하다. 그 가운데는 대통령이 “동업자”라고 한 동업자 비리 등 유형 또한 가지 가지다. ‘암군(暗君) 밑에서 간신(奸臣) 난다’고 했다. 측근 비리는 측근을 둔 사람의 책임이다. 즉 대통령 사람들 비리는 대통령의 책임인 것이다. 최고 권력을 등에 업은 측근의 발호는 최고 권력자의 처신이 잘못된 탓이다.
그러나 이를 솔직히 시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구차스런 변명이 앞섰다. 이래서 국민의 분통을 더욱 터뜨리게 만든다.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이번 경우 역시 다를 바가 없다. “검찰수사 결과에 따라 입장을 다시 정리해서 밝히겠다”면서 대국민 사과를 유보했다. 대국민 사과의 유보는 ‘소설을 쓴다’고 했던 마음보를 당장 꺾고 싶지 않은 오기인 것이다. 타이밍을 놓치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어찌 검찰수사 뿐인가, 재판을 해봐야 할 것이고 재판도 확정판결이 나야 할 것이나 측근 비리는 이게 아니다.
한번 동지인 관계는 영원한 동지로 어떤 처지에 있든 챙기고자 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써 노무현의 장기라면 장기다. 이것이 그들 사이엔 의리로 통할지 모르지만, 국민사회의 눈엔 패거리 협잡으로 비친다. 하물며 비리에 ‘읍참마속’은 커녕 감싼다면 불의로 지탄받는다.
신정아 게이트는 아닌게 아니라 소설같은 이야기다. ‘깜도 안되는 소설’이라던 것이 감이 되는 소설같은 실화의 실체는 아직 미궁이긴 하다. 미궁이지만 압수수색 벽두에 나타난 단서가 그같은 정황을 말해 준다. 도대체 측근의 권력 남용이 어디까지 갔는지 궁금히 여겨진다. 지금까지 나타난 가짜 박사의 교수 임용, 광주비엔날레예술감독 기용 등 혐의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왕조시대에 임금은 부끄러움이 없다하여 ‘무치’(無恥)라고 했는데도 부끄러움을 알았다. 왕도 아닌 대통령이 ‘무치’를 능사로 알아서는 착각이다. 이제 몇달 남지 않긴 했어도 좀 염치를 알았으면 한다. 국민이 대통령을 욕하게 되는 것은 대통령의 불행이기 보단 국민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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