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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금)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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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칼럼/수도권 문제, 손학규와 이해찬

‘망건 쓰다가 장 파한다’고 했다. 이 정부가 외투기업 공장 신설을 행정도시 건설 및 공공기관 지방이전 효과를 보아가며 점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게 이렇다. 망건 쓰다가 장 파하고 버스 떠난 뒤 손드는 꼴이다. 물론 장은 다음 날 장도 있고 버스는 또 온다. 그러나 이번 장을 꼭 봐야 하고 지금 오는 버스를 꼭 타야할 기약된 절박한 사정이란 것도 있는 게 세상사 이치다.

미국 3M, 일본 NEG, NHT 등 LCD소재 첨단 업체가 이번 상반기 중 예정된 공장 신축공사를 착공하지 않으면 기껏 유치해 놓은 5억3천600만 달러의 외자가 날아갈 위기에 놓인다. 십중팔구는 중국 등 제3국으로 갈 것이다. 1천570여 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무산된다. 상반기라야 50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여파로 독일의 자동차 부품, 영국의 독감백신 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4억달러 규모의 외자유치마저 막판 단계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 입장에선 외투기업의 공장신설 허용문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민경제로 보아서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다음 장날이나 다음 버스로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다. 이런데도 이 정권은 행정도시와 공공기관 이전 효과를 보아가며 천천히 하자며 늑장 타령이다.

국내 첨단 대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내 공장증설이 안 되면 투자를 대기하고 있는 6개 대기업의 3조6천억원이 다른 시·도로 가는 게 아니고 투자를 포기하거나 중국 등으로 갈 판이다. 고용 증대를 해칠 뿐만이 아니라 연간 100억달러의 수출 차질을 가져온다. 정략에 눈이 멀어 국민경제를 압살하고 국가경쟁력 저해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 정부가 즐기는 토론이나 회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협의가 아니다. 미리 짜놓은 결론의 입맛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토론이고 회의다. 퇴장은 성급했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소린 뭘 모르는 한가로운 소리다. 말하기 쉬운 양시론이나 양비론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이해찬 총리가 주재한 수도권발전대책협의회 제3차 회의에서 들러리 노릇을 거부하고 자릴 박차고 나온 것은 아주 적절했다. 그런 사람들의 정략적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더 이상의 대화는 백날 애써 봐야 무의미하다.

이 총리는 이미 행정도시에 동의한 손 지사를 들러리 세워도 자릴 박차기까지는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손 지사는 용케 탈출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천신만고 끝에 유치한 외자에 대한 애착심, 그리고 피부로 느끼는 도내 첨단 대기업의 애로 타개가 국익이라고 믿었던 평소의 소신도 소신이지만, 행정도시 반대에서 동의로 돌아선 훼절은 큰 부담이었다. 이를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반대로 탕감하려고 했지만 훼절의 부담을 덜기엔 지은 과오가 너무 컸던 것이다.

수도권 규제 철폐를 얻어내기 위한 행정도시 동의의 고육지책이 결국 이 정권에 이용만 당하는 처지에서 용케 탈출하는 데 타이밍을 맞춘 것이 제3차회의 중도 퇴장이다. 이해찬 면전 핍박은 손학규로서는 시기나 명분이 딱 들어 맞았던 것이다.

손 지사의 행정도시 동의는 철회되지 않았다. 이의 철회 여부는 이 총리가 악역으로 나선 이 정권의 입장, 즉 수도권규제철폐 여부와 함수관계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대권 다툼과도 무관하지 않다. 손 지사는 이미 다 알려진 한나라당 차기 주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총리는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이 드러난 열린우리당 주자인 데 비해 숨어있는 주자다.

이런 구도에서 이 총리의 손 지사 견제구는 고도의 α술수가 잠재된 속내일 수 있다. 행정도시 동의를 우군으로 보기보다는 되레 훼절의 취약점을 역이용해 무력화시키자는 것으로 해석되는 객관적 관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권 다툼 관련의 이런저런 역학 관계가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외투 첨단 기업의 공장 신설, 국내 첨단업종의 대기업 공장 증설은 국익과 민생을 위해 시급하다는 사실이다. 수정법도 계획적 관리 체제로 전환돼야 하는 것이 새로운 시류다.

우리가 후발국인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것은 쥐를 잡는데 흰 고양이가 좋으냐, 검은 고양이가 좋으냐는 식으로 고양이 색깔시비를 일삼는 이 정권의 정략놀음 때문이다. 망건 쓰다가 장 파하는 낭패가 있어선 안 되는 건 국민적 경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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